빛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출34:27-35)
빛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출34:27-35)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은 깨어졌다.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언약의 회복을 간구한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모세를 불러 다시 말씀을 주신다. 그는 말씀을 받아 산에서 내려온다.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 사람들은 두려워서 가까이 오지 못한다. 모세가 그들을 불러 말씀을 전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수건을 쓴다. 하나님께 가서 말씀을 받을 때는 수건을 벗는다. 말씀과 빛을 생각한다.
모세는 세상의 모든 관계를 뒤로 하고 산 위에 올랐다. 하나님과 대면하며 말씀을 받았다. 그는 은총을 입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기쁨을 나누었다. 내려올 때 그는 하늘 기운으로 충만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그러나 산 아래 목이 곧은 백성들은 여전히 세상 기운으로 충만하다. 세상의 빛에 취해 있다. 그들은 하늘빛과 주의 말씀이 부담스럽다. 모세는 그들을 위해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다. 엄중한 말씀을 전한다.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이방 족속들과 교류하지 말라 등 금지의 계명들을 전한다. 선민이지만 여전히 세상에 취해 있기에, 이방과 교류하면 그들의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선민들, 하늘의 빛과 말씀에 취해 있는 신자들은 세상에서 오는 빛과 말들을 밀어낸다. 그리고 하늘에서 받은 빛과 말씀을 드러낸다. 세상을 밀어내고 하늘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을까? 과연 세상을 밀어내고 하늘빛을 발산하는 상태일까? 여전히 세상에 젖어서 하늘의 빛과 말씀이 부담스럽지 않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과 연합할 때,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 마음이 닿고 은총을 경험할 때, 우리도 스테반처럼 환경에 상관없는 하늘빛을 드러내며,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오늘 나는 무엇으로 기뻐하며 어디에 마음을 쏟는가? 여전히 보이는 세상과 육체에 묶여 있는가? 삶의 현장에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의식하며 오늘을 사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영원한 빛과 생명, 말씀이 오직 주께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을 믿습니다. 보이는 세상과 육신에 묶여 참된 빛과 생명을 보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영의 세계를 계시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오늘도 보이는 세상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음으로 보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소서. 모든 순간에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좋으심을 확신하며 그리스도께 드린 마음이 하늘에 닿게 하소서. 육신의 삶도 성령께서 주관하시며 이 땅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