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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4일 오전 09:04

되어지는대로 2019. 6. 24. 09:06

바스훌과 예레미야(렘20:1-6)

성전 감독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잡아 형틀에 묶었다. 그가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풀어주는 바스훌에게 예레미야가 예언한다.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가 돼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다. 거기서 네가 죽어 묻힐 것이다. 나와 네 거짓 예언을 들었던 모든 친구들 모두가 그곳에서 죽어 묻힐 것이다.” 바스홀과 예레미야의 인생을 생각한다.

두 사람 다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바스훌은 성전의 감독으로서 권력과 존경의 자리에 올랐다. 평화와 번영, 축복의 예언을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조롱을 당한다. 공개적으로 형틀에 묶이는 수치를 당한다. 백성들은 다윗 왕조와 성전은 영원하며 예루살렘은 평안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스훌의 예언듣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망한다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반민족적이고 패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스홀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왜 바스홀을 쓰지 않고 예레미야를 쓰셨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능력과 권위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약한 자, 미련한 자를 사용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 의문을 가지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바스훌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근거 없는 인간의 신념, 혹은 긍정적인 생각이 더 위험한 것이 아닌가? 이 시대 신자가 말씀대로 살다가 박해와 조롱을 당하는 것은 신자의 수치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조류와 풍조에 편승하며 안이하게 사는 것이 신자의 수치가 아닌가? 오늘 이 나라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며 쓰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문제를 지적하는 정동수 목사?, 아니면 그를 비난하는 손봉호 장로나 언론? 혼탁한 세상 속에, 심지어 교회 안에도 바스훌과 같이 위선적인 신자들이 많지 않은가? 나는 누구의 말 듣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세상의 조롱과 박해를 견디며 이길 수 있는가?

말씀하시는 하나님, 악한 세상 속에서 연약한 자를 택해 일하시며 구원의 경륜을 세우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어리석고 낙관적인 착각과 오해에서 벗어나 참된 거룩과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마음을 열어 오늘 제가 들어야할 진실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진리의 성령님의 조명과 인도를 받게 하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이 시대 신자의 여정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주님의 평강과 감사와 기쁨을, 말씀의 본질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주님의 영성으로 채워주소서,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