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의 보편적 원칙...(욥18:1-21)
빌닷의 보편적 원칙...(욥18:1-21)
빌닷이 분개한다. “자네 도대체 언제까지 말을 할 건가? 정신 좀 차리게... 분노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자여, 자네가 땅을 황무지로 만들겠는가? 바위를 옮기자는 것인가?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그 불꽃은 타오르지 않을 것일세...” 악인이 재앙과 고난을 받는다는 인과론을 주장한다. 욥에게, 왜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도 네 죄를 회개하지 않느냐 책망한다. 그의 문제를 생각한다.
그는 보편성의 원칙을 주장한다. 악인의 운명은 고난이며, 너도 그 원칙을 따라 네 안의 죄악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욥의 특수성을 자기가 생각하는 보편성을 따라 판단했다. 욥의 진실을 모르는 것이다. 이미 욥은 창조주의 절대 주권을 믿고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만 시선을 두고 경외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생이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욥이 세상의 보편적 원칙을 벗어난 외골수로 보인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뜻을 묻고 순종하는 삶이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보편적인 인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주체성을 고집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보편성의 체계를 만들어 간다. 빌닷도 그런 보편성을 지키라고 책망하며 욥과 하나님을 규정하고 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신자라면 반드시 어떤 방식의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는가? 예수님도 당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비난과 정죄를 받고 죽임을 당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의 보편적인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보편적인 믿음은 무엇일까? 우리도 욥과 같은 믿음을 과격하거나 교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판단의 죽음을 고백해야 하지 않는가? 오늘도 주님 안에서 참된 생명과 진리의 길을 바라보며 하늘 아버지의 평강과 기쁨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각자 자기 소견을 따라 남을 정죄하고 싸움을 일삼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계시하시며 영생의 길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피조물 됨과 창조주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날마다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세워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 주님과 그 말씀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