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욥30:1-15)
그러나 이제는...(욥30:1-15)
지난날을 회상하던 욥이 이제 현실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공포가 나를 엄습하며 내 영광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내 행복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리는구나.” 슬픈 탄식이다. 그의 아픔을 생각한다.
세상 기준으로도 그는 복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재앙의 현실을 맞고 있다.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도 조롱을 당한다. 수모를 당하며 인생의 바닥으로 밀려났다. 지난날의 영광, 행복은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았다. 소외와 미움 속에 세상의 경계 너머, 죽음으로 밀려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쫓겨나는 그의 심정은 절망과 두려움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그에게 허락하셨다. 마음을 두고 즐거워하며 의지하던 세상에서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땅의 축복, 풍요와 번영에 계속 잠겨있다면 그는 하늘로 마음을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에덴에서 추방된 죄인들에게 허락된 한시적인 무대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온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한 사망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영혼은 천국 자녀의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세상을 탈출하여 하늘에 이르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끊어내는 아픔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세상에서 버림받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이루신 이유가 그런 별세(Exodus)의 과정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오늘 나는 욥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아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고통 너머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명령은 고통이 아니라 복된 명령이며 영생으로의 초대이다.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바울의 마음이 감사와 기쁨인 것을 과연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이 재앙이 아니라 은혜로운 수술이며 영광에 이르는 과정임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연약한 육체는 아픔과 슬픔의 탄식을 하지만 십자가의 주님을 영접하며 영생과 진리의 길에 들어선 자는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혼돈과 공허의 땅에서 시선을 들어 주님의 십자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의 어두운 오늘을 이기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는 우리에게 천국이 있음을 깨우치며 하늘 자녀의 권세로 살아내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