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 앞에서 잠잠히...(욥37:14-24)
전능자 앞에서 잠잠히...(욥37:14-24)
엘리후의 마지막 변론이다. “오, 욥이여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욥의 고난으로 인한 인간들의 변론이 마침내 끝났다. 엘리후가 하나님 경외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사람의 본분을 생각한다.
엘리후의 판단과 달리 욥은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왔다. 항상 하나님의 기이한 지혜와 능력을 의식하며 자기를 낮추었다. 하나님의 주권, 그 주체성 앞에서 자기 주체성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재앙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정죄를 당하자, 그들에게 대응하며 하나님께 불평과 항변을 늘어놓았다. 억울한 재앙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엘리후의 이론이나 욥의 삶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 그 기이한 지혜와 능력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고 있을까? 욥처럼 예기치 않은 재앙, 인생의 변수를 만날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가? 엘리후의 말처럼 우리는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 앞에 가만히 서서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내 생각과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넘는 어리석고 오만한 짓이다. 상황을 수용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부터 회복해야 한다. 세상의 문제와 내 자신에서 마음의 시선을 돌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 향하며 그 음성을 들어야 한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기억하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세상에 속한 이기적인 나의 죽음부터 고백해야 한다. 마음을 다해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이 닿고 평강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모든 문제를 장악하시며 뜻대로 이루실 것이다. 과연 오늘 나는 하나님의 기이한 지혜와 능력 앞에, 전능자의 공의와 사랑 앞에 잠잠히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길을, 자녀의 본분을 따르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만물을 사랑과 공의로 지으시고 이끄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을 떠나 죄와 죽음의 길을 고집하는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 택하시며 영생의 하늘길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며 경외를 회복하며 가만히 서서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자녀의 온전한 삶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말씀과 성령으로, 하늘의 진리로 채우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오늘을 이기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