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구유의 도전적인 의미...(눅2:1-7)

되어지는대로 2022. 1. 7. 08:59

구유의 도전적인 의미...(2:1-7)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백성들은 호적 등록을 해야 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갔다. 해산할 때를 맞아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는다. 방이 없어 외양간에서 낳았다. 아기를 구유에 뉘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동물 우리에서 나셨다. 이 사건도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유는 단지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겸손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와 낮아짐은 하나님의 독생자가 땅에 육체를 입고 나셨다는 사실로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그곳이 구유라는 사실로 우리는 일부러 비천한 자리를 택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황궁이나 귀족의 침대가 더 좋고 구유가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것은 세상의 가치 기준이며 관점이다. 하늘나라의 관점은 오히려 구유가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세상의 편견, 가치 판단의 체계를 깨뜨리는 도전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궁전이나 부잣집은 탐욕과 죄악으로 오염된 곳이고, 동물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청결한 장소라는 뜻이 있지 않을까? 세상에 비해 무한히 아름답고 좋은 천국에서 볼 때, 죄로 오염된 곳은 겉으로 아무리 화려하고 깨끗하게 꾸며도 역시 더러울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죽음의 판결을 받은 죄인들이며, 세상은 죄수들의 수용소와 같지 않은가? 그리스도는 그런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하늘나라 영생의 구원으로 부르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저주받은 세상이 만족하며 자랑하는 성공의 자리에 오실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을 탈출해 하나님과 천국을 간절히 갈망하고 소원하도록 이끌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번영과 형통의 자리는 구원과 관계가 없으며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택하신 천국의 자녀들도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세상의 것을 사랑하며 소원하는 가치 기준을 버려야 한다. 오늘 나는 그리스도가 어디로 어떻게 오셔야 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하늘의 아버지와 천국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정말 좋다고 믿는가? 그러면 왜 사라질 세상과 육체에 마음이 묶여서 슬퍼하며 낙심하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만물의 참된 근거와 좋음은 오직 아버지께 있음을 믿으며 계시하시는 그 영광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보이는 땅의 모든 것이 죄와 사망의 저주로 혼돈과 공허에 묶였으나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으로 영생과 진리의 세계가 열린 것을 믿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늘나라의 좋음, 그 영광에 비하면 세상의 것들은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그날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소서. 그의 나라의 의를 구하며 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