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과부의 헌금, 내일의 보장?(눅21:1-9)

되어지는대로 2022. 3. 15. 08:43

과부의 헌금, 내일의 보장?(21:1-9)

 

한 여인이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었다. 예수가 말씀하신다.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했다. 사람들은 넉넉한 가운데 예물을 드렸지만 이 여인은 가난한 가운데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 어떻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생활비를 다 바칠 수 있을까? 그녀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마도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녀가 하나님을 찾아 성전에 왔다. 곤고한 마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성전의 상번제, 어린양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깨닫는다.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한없는 사랑을 깨닫는다. 영생과 진리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충만하다. 안정된 삶과 미래를 향한 염려, 현실의 고통을 압도하는 하늘 아버지와 천국의 존재를 느낀다. 생활의 걱정, 근심 등이 다 사라졌다.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감사함으로 가진 것을 드린다. 생활비를 헌금함에 넣으며 그녀에게는 희생이나 헌신, 섬김이라는 의식조차 없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헌금도 아니다, 미래는 그녀의 의식에 없다. 소중한 것을 정성으로 넣은 것도 아니다.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그냥 드렸을 뿐이다. 세상과 자기를 잊고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넘겨드렸다. 그 순수한 헌금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그녀의 내일을 장악하며 책임지실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움직이는 헌금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드렸다고 하신다. 어제 본문의 서기관들과 대조되는 말씀이다. 말씀을 공부하고 거룩한 이름을 부르지만 사실 그들은 세상의 돈, 권세, 명예 등을 더 큰 존재감으로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기득권을 축복으로 여기며 세상과 육체에 안주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고 있지 않다. 세상의 이름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를 통해 천국을 체험하는 은혜를 입고 있는가? 과연 세상의 염려와 근심보다 하늘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영원한 천국의 느낌이 더 크고 강한가?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어떤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오늘을 허비하는가? 하나님의 주권, 그 헌금함에 내 모든 것을 드려야 하지 않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만물과 생명, 역사를 시작하시고 보존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들꽃도 입히고 공중의 참새도 키우시며,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아버지의 전지전눙하신 주권 아래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미혹과 혼돈,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 사랑의 말씀 안에서 은혜받은 자녀의 기쁜 날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시고 영생과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남은 삶의 모든 일과 관계를 감당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