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변명...(눅22:54-62)
베드로의 변명...(눅22:54-62)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동안 열심히 예수를 믿고 따랐다. 체포의 순간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예수가 체포당하는 상황에 그는 당황한다. “이럴 수는 없다. 이게 뭐지?” 황망한 상태에서 그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다. 그리고 통곡한다. 사실 그는 예수를 사랑한다. 예수가 싸웠다면 그도 목숨을 바쳐서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싸우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인생도, 자신의 길도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예수의 길을, 이제 그리스도의 진짜 사역이 시작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생각한다.
갈릴리 어부인 그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났다. 그 초월적인 능력과 말씀을 보고 기뻤다. 꿈을 품었다. 전에 없었던 위대한 비전의 새 인생을 살게 되었다. 나라의 독립과 번영, 멋진 자기 인생의 성취를 기대하며 가슴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 예수가 악한 자들에게 무력하게 체포되고 멸시를 당한다. 모든 기대와 바램이 무너졌다. 당황하며 절망한다. 미래의 길, 희망이 사라졌다. “분명히 그리스도이신데 어떻게 이런 일이?” 저주와 고난 속의 예수를 보고, 그는 믿고 따르던 예수를 부인한다. 밖에 나와서 통곡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 일을 위해 오셨다. 공생애의 기적은 사람들의 마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며, 사람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저주 가운데 던져져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은 그들의 마음을 저주받은 땅에서 건져 부활의 나라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을 향한 그들의 비전과 소원을 이루어주려고 오시지 않았다. 이처럼 진짜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들의 마음을 세상에서 탈출시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이끌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세상에 젖어있는 마음을 세상에 대한 죽음, 곧 참된 제사와 죄사함의 회개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베드로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한 내 소원, 내 육신의 욕망이 성취될 것을 원하지 않는가? 베드로와 같이 자신에 대한 절망과 통곡의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참된 믿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에 연합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하늘 아버지의 영광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오늘 나는 참된 구원, 하늘 아버지의 뜻과 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소원하며 어떤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우리는 보이는 세상의 길이 전부인 줄 알지만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를 통해 죽음 너머 영생과 진리의 새로운 길이 있음을 배웁니다. 세상의 끝은 죄와 사망, 심판과 멸망이지만 아버지께서 사랑과 은혜로 준비하신 믿음의 길은 하늘나라, 영생의 천국으로 이어짐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따라 하늘길에 오르는 우리 마음을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주시기 원합니다. 세상과 육신의 시험을 이기며 어둠의 악한 권세를 벗어나게 하소서. 하나님을 잊는 죄악에서 구원하소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이루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