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에스라의 염려, 금식 기도.(스8:21-36)

되어지는대로 2022. 4. 19. 08:38

에스라의 염려, 금식 기도.(8:21-36)

 

   에스라가 금식기도를 선포한다. 이유를 설명한다. 예루살렘까지 1500km의 긴 여정이다. 성전을 위한 보물들, 연약한 가족들도 함께 간다. 도적떼 등 위험이 도처에 산재한다. 그러나 왕에게 호위부대를 요청할 수 없다. 이미 왕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그 위에 있고 하나님을 버리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의 능력과 진노가 그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가 왕에게 군대까지 부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정을 앞두고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말과 실제는 다르다.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를 선포한다. 기도의 능력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선민들에게 은총을 약속하셨다.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은혜로우신 주로 믿는다. 페르시아아의 왕 등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고백하며 증언했다.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다. 이론과 지식으로는 주의 보호를 믿지만 실제로는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머리로, 이론으로는 알지만 내 안에서 내 하나님이 실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참된 믿음이 아니지 않은가? 은혜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기도를 시작한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충만한 느낌의 실제 믿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평강을 주시고 실제로 그들의 여정을 보호하셨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염려를 버리지 못한다. 온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죽이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금식기도가 필요하다. 세상을 갈망하는 육체에 종속된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고 소원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기도가 금식기도가 아닌가? 과연 오늘 내 마음은 지금 내 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감과 좋으심으로 충분히 채워졌는가? 믿음이 아니라 육신을 따라 산다면 평강은 여전히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육체로 만나는 어떤 대상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영원한 진리이시며 실재이심을 믿습니다. 은혜로 택하신 자녀들에게 거룩한 말씀과 성령으로 계시하시며 함께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참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영적 세계의 진실을 우리의 현실로 느낄 수 있기 원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요구, 모든 염려를 이기며 주의 영원한 나라와 의를 구하고 찾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 아버지의 영원한 세계, 그 영광을 바라며 감사와 기쁨의 삶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