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평강이 깨어졌는가?(시25:1-22)
왜 평강이 깨어졌는가?(시25:1-22)
다윗이 탄식하며 기도한다. 악한 공격이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근심이 갈수록 더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목자이시다. 그가 하나님의 양이라면 어떤 환란에도 두렵지 않아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그의 평안은 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평강이 없다. 원수가 문제가 아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떠나셨는가? 그는 생각한다. 나의 죄 때문이 아닐까? 용서를 구한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며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는 그를 생각한다.
다윗의 시는 탄식과 간구로 시작해도 대부분은 구원과 감사로 마친다. 외적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그의 마음은 평강을 회복한다. 그러나 이 시는 계속 구원을 간구한다. 죄의 문제가 그의 마음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용서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구원의 하나님을 찾는다. 마음에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류는 모두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창조주 앞에서 죄의 문제를 벗지 못한다면 평강과 기쁨도 없을 것이다. 어떤 환란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전의 상번제는 매일 우리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 구약 시대 상번제의 완성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사역이 이루어졌다. 이 사건이 지금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사는 죄사함과 구원의 역사가 내 안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매일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함으로 원죄의 체질이 죽고 성령으로 다시 살아야 한다. 과연 오늘 나는 바울처럼 날마다 죽으며 다시 살고 있는가? 그 평강이 내 안에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평생 따를 길인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기도로 오늘을 사는가?
구원의 하나님, 무한한 긍휼과 사랑으로 죄와 사망의 저주에 묶인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원죄의 체질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죄의 유혹과 시험에 시달리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심을 믿습니다. 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 십자가에 연합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오늘도 믿음과 소망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이르게 하소서, 담대하고 강건한 자녀로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그 뜻을 구하고 찾으며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