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통해 넘치는 위로!(고후1:1-11)
그리스도를 통해 넘치는 위로!(고후1:1-11)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모든 환란 가운데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인해 우리도 환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칩니다.” 세상의 위로와 신자의 위로를 생각한다.
세상도 위로한다. 사업이 망했다면 사업을, 돈과 명성, 혹은 건강을 잃었다면 그런 것들의 회복을 말하며 용기를 준다. 때로는 고통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있어 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진정한 위로일까? 참 위로는 무엇일까?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한다. 영원하고 궁극적인 위로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다. 사실 진짜 고난은 죄와 사망의 저주 가운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이다.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돈과 권력, 명성 등 세상과 육체의 대상들은 고난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궁극적인 원인은 그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났고 잊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 목숨까지 잃어도 욥처럼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참 위로를 얻은 것이다. 바울은 고난을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미음에 사형선고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면한 세상의 문제보다 전능하시며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정한 위로와 소망,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과 지혜로 하는 세상의 위로는 일시적이며 한계가 있다.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 우리를 위한 어린 양으로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하늘에 계신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를 만나 화목하게 되는 소망을 전하는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초월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죽음에 묶인 우리 인생의 참 위로가 아닌가?
영원한 생명과 위로의 하나님, 혼돈과 공허, 흑암의 땅에서 죄와 사망에 묶인 채 살아가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미혹에 빠진 채 고통과 슬픔 속에 탄식하는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길로 부르시며 영생의 자리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천국의 영광, 그 빛과 생명의 위로 가운데 천국 자녀의 길을 담대히 걷기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 있게 하소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참된 위로를 나누며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