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사도의 자랑, 바울의 자랑(고후11:16-33)
거짓 사도의 자랑, 바울의 자랑(고후11:16-33)
바울이 억지로 자랑한다. 거짓 사도들의 자랑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고린도의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신의 권위를 자랑한다. 스스로 높인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교인들을 종으로 삼고 거친 언사로 권위를 가장한다. 바울은 다르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쳤으나, 기적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헐벗고 죽을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을 자랑한다. 극심한 고난이 자랑이 될까?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것이 자랑이다. 이유를 생각한다.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안에 들어와 계신 그리스도를, 그를 이방인 사역의 종으로 쓰시는 주를 자랑한다. 자기 권위를 높이며 자랑하지 않는다. 이미 십자가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힘으로 살지 않는다.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받은 소명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바울과 같은 고난의 삶을 자랑하지 않는다. 견디지도 않는다. 부끄럽게 생각하며 회피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당당하다. 순교까지 감당한다. 그의 마음은 세상에서 육체의 성취와 영광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있으며 천국의 현실감, 즉 절대적인 평강과 기쁨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런 바울이 진짜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나 거짓 사도들은 신자들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가치와 육체의 이익으로 유혹한다. 세상의 현실감으로 채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하나님과 천국으로부터 그 마음이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자신의 욕망과 뜻을 위해서 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을 간과하거나 미워하게 만든다. 과연 오늘 나는 무엇을 자랑하는가? 육체를 자랑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는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길을 따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지금 하늘로부터 오는 절대 평강, 절대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사랑과 은혜로 택하고 부르신 우리 자녀들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 임하며 그 뜻이 이 땅에 있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그런 삶을 위해 필요한 양식과 건강과 지혜와 능력과 용기를,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헛된 육신의 우월감과 자랑에 매이지 않으며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이미 죽었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살아있는 믿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이루며 감사의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