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넉넉한 에서, 오버하는 야곱(창33:1-11)

되어지는대로 2022. 10. 11. 08:57

넉넉한 에서, 오버하는 야곱(33:1-11)

 

   멀리서 다가오는 에서를 보았다. 야곱은 땅에 엎드려 일곱 번 절하며 형에게 나아간다. 에서가 달려와 야곱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춘다. 함께 울었다. “왜 가축 무리가 먼저 왔느냐?” 에서가 묻는다. 형께 드리는 선물이라 답한다. 형이 말한다. “내 동생아, 나는 이미 가진 것이 많다. 네 것이니 네가 가져라.” 에서는 넉넉하다. 과거의 원한은 잊었고 동생을 품는다. 장자권을 뺏은 야곱보다도 훨씬 더 큰 부자인 것 같다. 어떻게 이런 화해가 가능했을까?

 

  하나님의 축복은 받아냈지만 야곱은 여전히 에서를 두려워한다. 일행 중에 아내와 자녀들을 편애하며 차별해서 세운다. 라헬과 요셉을 가장 뒤에 서게 한다. 일곱 번 절을 하는 것은 패전한 왕이 승리한 왕 앞에서 철저한 복종을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며 선물을 드린다. 형의 용서를 얻기 위해 비굴해 보일 정도로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에서는 의외로 넉넉하다. 이미 용서와 화해를 결정하고 온 것 같다. 그들은 함께 울며 혈육의 사랑을 드러낸다. 오히려 에서가 훌륭해 보인다. 더 큰 부자가 된 것 같다. 에서는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결심했을까? 아마도 마하나임 때문이 아닐까? 32장에서 마하나임(하나님의 군대)이 야곱 일행을 스쳐 지나갔다고 기록한다. 뜬금없는 이 기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을 보고 계시며 통치하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을 지키기 위해서 일을 하셨다. 하늘의 군대를 보내서 에서와 싸웠다. 에서는 물론 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넉넉한 마음으로 동생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야곱에게 당신의 뜻을 다 이룰 때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 야곱이 믿지 못했을 뿐이다. 과연 오늘 우리는 마하나님의 하나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하나님을 이긴 야곱처럼 여전히 염려와 걱정, 두려움에 시달리며 필요 없는 노력과 고난을 자초하며, 오버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전능하신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가 주의 섭리적 주권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조물주의 지혜와 사랑의 뜻 아래 세상이 보존되며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베풀어질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당면한 세상과 육체의 문제들이 하늘 아버지와 영원한 나라에서는 일시적인 시험과 고난에 지나지 않는 것도 배웁니다. 오늘 우리도 이 땅에서 우리를 지나가는 마하나임을 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우리도 받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며 그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