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들의 살인과 약탈...(창34:18-31)
선민들의 살인과 약탈...(창34:18-31)
야곱의 아들들이 청혼하러 온 세겜 사람들에게 답한다. “저희는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 누이를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희에게 수치가 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가 저희처럼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할례를 받았다. 그들에게 복의 근원이 될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상처로 힘을 못 쓰는 그들을 기습했다. 잔혹한 살인과 약탈극을 벌였다. 끔찍한 악행이다. 이 피바람을 보고 야곱은 두려움에 떤다. 그의 아들들의 말이 거짓이며 행동이 악함을 보았다. 선민의 자손들에게 어떻게 이런 악행이 나왔을까?
야곱은 자기 생각과 노력으로 자기 주체성을 주장하며 살아왔다. 얍복의 씨름에서도 끝까지 자기 복을 고집했다. 형과 장인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세겜에 와 보니 마음에 들었다. 그 땅을 샀다. 스스로 안정된 삶의 조건을 만들며 정착했다. 형통한 삶, 만족한 노년을 기대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부패하고 타락했다. 저주와 심판 가운데 멸망의 길을 간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선민도 고통의 길을 간다. 야곱에게는 시한폭탄이 있었다. 차별과 편애의 가정, 상처와 편견에 싸여 자기를 고집하는 아들들이 폭탄이었다.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를 사랑하지 않는 그들의 인생에 평안은 없었다. 딸의 불행, 학살과 약탈극, 라헬의 죽음, 요셉의 인신매매 사건 등 그 가정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 안에는 하늘로부터의 근원적인 평강과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세상의 조건과 안전에도 있지 않다. 참 평강과 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참된 믿음과 소망, 사랑 안에서 주께 온 마음을 드리는 선민들에게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런 폭탄이 없을까? 우리의 안전과 평화, 참된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별세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따라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닿을 때에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부패한 땅에서 원죄의 체질 아래 태어나 고난 가운데 살며 죽어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죄 아래 살지만 긍휼과 사랑으로 간섭하시며 이끄시는 아버지의 은혜로 우리가 영생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의 마음도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살기를 원합니다. 이 구원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 매 순간 십자가의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성령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소서. 강건하고 담대한 믿음의 자녀로서 육신의 길을 떠나 영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