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돔의 복, 이스라엘의 복?(창36:1-43)
에돔의 복, 이스라엘의 복?(창36:1-43)
36장은 에서, 즉 에돔의 족보를 기록한다. 에서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번성한다. 왜 에돔이 번영하는 모습을 기록할까? 장자권과 축복기도까지 뺏은 야곱과 빼앗긴 에서의 결과는 기대와 다르다. 야곱은 기근을 못 견디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후손들은 노예로 430년을 보낸다. 선민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 에서의 후손들은 이미 가나안에서 왕국을 세웠다. 그들은 번성하며 복을 누린다. 이 기록의 의미를 생각한다..
선택받은 야곱과 받지 못한 에서의 대비, 특히 야곱이 그렇게 소원하며 고집했던 물질의 축복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본래의 복이 아님을 암시하려는 것이 아닐까? 에돔은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 스스로 왕국을 세우고 번성한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상을, 자식을 바치는 몰렉 우상까지 섬긴다. 번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시록의 바벨론, 음녀와 같이 부패와 타락,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 34, 35장에서 야곱 가정의 악함이 드러난다. 아들들이 세겜에서 거짓말과 학살, 약탈극을 벌렸다. 아들 중 하나인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했다. 패륜적인 일이 이스라엘에 발생했다. 택함을 받은 선민이지만 악한 본성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에 사로잡힌 노예이며,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민 가정의 악행을 기록하며 에돔을 비교한다. 그러나 에돔이 착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 복도 사실은 복이 아니다. 부패한 세상과 육체에 종속된 마음이 더 깊이 죄악에 빠져들며 멸망의 길을 재촉할 뿐이다. 그러나 선민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더 이상 악에 빠지지 않도록 고난을 주시며 제어하신다. 오히려 에돔은 간섭하지 않으신 것이 아닐까?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이미 육신의 노예가 된 마음이 가는 대로 짓는 가나안의 악한 삶보다 낫지 않을까? 이스라앨은 다윗 시대에 에돔을 점령했다. 복을 오해하고 그리스도를 죽인 이스라엘도 결국 망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은 무엇일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연결되는 것이 참된 복이 아닐까?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함이 복이 아닌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상은 날로 번영하며 만족을 누리고 선민들은 조롱과 박해를 당하며 고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리는 삶에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로 주님 안에서 새 피조물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거룩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찾으며 이 땅의 소금과 빛이 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