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인생 해석법(창45:1-15)
신자의 인생 해석법(창45:1-15)
노예를 자청하는 유다의 말에 총리 요셉이 오열한다. 자신이 동생 요셉임을 밝힌다. 두려워하는 형들을 안심시킨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애굽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해석은 하나님을 믿는 선민들이 인생을 해석하는 본보기인 것 같다. 신자들이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을 생각한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먼 나라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러나 분노와 원망, 혹은 낙심과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해서 하늘에 소망을 두었다. 꿈을 꾸듯이 현실을 살아냈다.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노예와 죄수로부터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며 형통하게 하심을 깨달았다. 고통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넓혀주셨다. 그는 더욱 큰 사랑과 넉넉한 마음을 배웠다. 형들을 만났을 때 아마 처음에는 마음 깊숙이 분노와 원망이 솟구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주의 종으로 사는 사람이다. 인생의 해석이 세상과 다르다. 어릴 적의 꿈을 기억한다.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을 보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 섭리를 깨닫는다. 그러므로 형들을 위로한다. 모두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 선민들은 자신의 현실을 다르게 해석한다. 공중의 새 한 마리도 창조주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으며 그분의 통치에 우연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가치관도, 삶의 목적과 소원도 다르다. 요셉의 이런 해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고통,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며 분노와 미움, 혹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서, 세상과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살 수 있기를 소원한다.
만물과 역사의 주 하나님, 모든 생명과 역사의 영원한 주권이 오직 주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스스로 계신 유일한 존재이시며 온전한 좋으심도, 선악의 판단도 오직 주께 속한 것을 고백합니다. 그 부르심과 인도를 따르는 자녀이기에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는 기도의 소통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도 믿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주어진 현실을 해석하며 아버지의 나라와 뜻이 이 땅 우리 가운데 성취되는 날을 바라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와 부활, 이 구원의 길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