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마땅한 왕정 체제...(삼상10:17-27)
못마땅한 왕정 체제...(삼상10:17-27)
사무엘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냈고 이집트뿐 아니라 너희를 짓누르던 모든 나라들로부터 너희를 구해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모든 재난과 고통에서 너희를 구해내신 너희 하나님을 거부했다. 그리고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세워주십시오’라 했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했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못마땅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신다. 왜 그러셨을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다르다. 그들에게 중요한 현실은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 삶의 현장에서 풍요롭고 우월하게, 안전하게 살고 싶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현실로 여기지 않는다. 세상 나라들처럼 왕정 체제와 사회제도 등의 보장을 받고 싶다. 보이는 지도자, 영웅 등에게 마음을 쏟고 열렬히 추종하고 싶다. 그러나 세상의 그런 것들이 결국 하나님을 잊게 하며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이미 삶의 현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선민들이 온전하려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름, 최고의 존재감과 현실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소중한 자기 현실로 여겨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며 그 주권과 뜻으로 그들을 온전한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면 그들은 땅에서도 낙원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성전에, 종교의 영역에 가두어 놓는다. 예배할 때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당에서는 예배한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세상의 관습과 전통을 따른다. 물론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자기 뜻과 소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도우미로 동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 주체성을 고집하는 신앙은 참 믿음이 아니다. 가짜 믿음, 기복적인 종교심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도 그들의 현실감에서 당신이 최우선이 아닌 것을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 예배당에 갇히실 수 없다. 대책을 세우셨다. 그들의 요청대로 왕을 택하고, 그 왕을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이끌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왕이 중요하다. 신약 시대인 오늘 신자들은 각자 삶의 현장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직 믿음으로 오늘을 사는가? 매일 삶의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교제하며, 그 뜻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사랑의 주 하나님, 죄와 사망에 매인 인생들에 영생과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을 베푸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교만과 무지의 요구들을 참으시며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심판을 연기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어둠과 혼돈의 땅에 참 생명과 진리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그 은혜로 각자 있는 곳에서 빛으로 살라 하셨으니, 그 빛으로 충만히 채워주소서. 하늘에 오르신 주님,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의 마음도 아버지께 이르며 하늘의 소망과 믿음, 사랑으로 충전 받게 하소서. 오직 하늘 아버지의 빛과 사랑으로 주변을 밝히며 오늘을 살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