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다(삼하15:13-23)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끈질기게 추진했다. 포퓰리즘으로 민심을 훔쳤다. 하나님의 이름도 도적질했다. 이스라엘 지파들을 선동했다. 병거와 군비를 모으며 세력을 규합했다. 다윗이 그런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다. 아들을 사랑하는 그는 위험을 간과했다. 반란의 소식을 듣자 그는 즉시 예루살렘을 포기한다. 왜 그렇게 쉽게 도피를 결정했을까?
민심이 압살롬에게 돌아섰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전쟁을 피하려는 것이 아닐까? 다윗은 왕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그는 재앙도 받아들일 믿음의 사람이다. 마음이 육신의 복에 매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육신의 분노와 원한, 그리고 야망에 매여있다. 자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용납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육의 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 육신의 욕망에 매인 삶이 얼마나 큰 죄인 줄 안다. 자신에게 닥칠 고난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아들의 반란이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가정에 허락하신 재앙임을 깨달았다. 그는 도피를 결정했다. 고난을 당하기로 정했다. 그를 따르는 이방인 용병들에게도 돌아가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를 따른다. 배신한 아들, 그리고 돌아선 이스라엘의 민심과 다르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의 이익, 자기변호와 방어의 본능까지 포기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 패턴은 세상의 상식과 다르다. 모든 것을 선하신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맡긴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모른 체하지 않으셨다. 온전한 믿음은 그처럼 자기 의와 권리를, 고통을 주장하지 않는다. 십자가 수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죽음을 오히려 기뻐하며 맞는 스테반과 사도들처럼, 그 마음이 세상과 육신을 벗어나 하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이 택하신 성도의 삶이 아닐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창조주를 떠나 스스로 신이 되려는 피조물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하시며 영생의 자녀로 부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배신과 모반, 전쟁 등 재앙이 쓰나미처럼 세상을 덮으며, 택하신 자녀들도 세상에서 버림받고 환란 속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낙심과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과 영생의 구원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겸비하기로 마음에 정한 자녀들을 지키소서. 모든 것을 잃어도 오직 하늘의 아버지로 기뻐할 수 있는 그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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