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하늘에서 빛이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요1:1-8)

되어지는대로 2025. 1. 1. 06:27

하늘에서 빛이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1: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의 장엄하고 신비한 시작이다. 다른 복음서는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나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시작하여 땅을 향한다. 시공간 위 영원의 주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며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로 말미암아 지어진 세상과 인간을 묵상한다.

 

   본문의 태초는 시간의 처음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다. 시공간의 세상 밖에 있는 영원의 세계일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시간 밖의 지금, 그리고 영원히 계신 곳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생각이 밖으로 표현된 내용이 말씀이다. 그 말씀을 예수가 기뻐하며 그대로 받으신다. 그도 하나님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며 창조가 이루어졌다. 보이고 들리는 시공간과 물질의 세상, 그리고 사람이 있게 되었다.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다. 생명은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사람이 살아있는 이유와 근거가 된다. 그 생명이 사람에게 들어오는 빛이다. 그 빛이 없으면 혼돈과 공허, 흑암, 깊음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인격체로 지어져 세상에 있게 된 사람이 영이신 창조주, 유일하게 스스로 있는 하나님을 배반했다. 있게 된 세상에 현혹된 육체로 전락했다.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태양들, 우상들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영원한 세계의 주 하나님과 그 말씀에서 분리되었다.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혀있다. 생명이, 그 영이 죽은 것이다. 그 영적 어둠이 사람에게는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땅에서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속이고 싸우고 죽이고 약탈하며 어둠 속을 각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달려간다. 마침내 영적 존재인 본래 사람 됨의 회복을 위해 영원의 세계에서 참 생명의 빛이 내려왔다. 그 빛이 저주받은 땅에 비추어졌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 생명이요 진리의 빛이신 예수를 거부한다. 그들은 선민 이스라엘이다.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위해 택하심을 받았다. 그들은 왜 자기들의 생명이며 빛으로 오신 예수를 미워하며 죽였을까? 하늘에서 오는 은혜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외모에, 있게 된 육체와 물질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땅의 어둠에 갇힌 채 익숙한 육의 삶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은혜와 진리는 세상에, 사람 안에는 없다. 밖에서, 하늘에서 내려받아야 한다. 하늘의 빛과 말씀, 생명과 진리의 충전을 얻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삶의 이유를 발견하며 생명의 충전을 받고 있는가? 어둠 속의 현실을 깨닫고는 있는가? 익숙한 땅의 전통과 관습, 가치관을 떠나 하늘의 참 생명이며 말씀이신 주님을 영접하며 그 은혜의 십자가 구원의 길을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따르는가?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 세상을 있게 하시고 보존하시며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주를 등진 채 혼돈과 공허. 어둠에 갇힌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며 생명과 진리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하늘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따르기 원합니다. 어둠의 땅을 등지고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사망을 이기고 하늘 영광을 드러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