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와 겸손, 용납과 화평(엡4:1-6)
3장까지 교리적 가르침이지만, 4장부터는 신앙생활의 실천편이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 권면한다. 온전히 겸손하며 온유하게 행동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며, 화평의 매는 줄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갈등과 분열, 분노, 전쟁의 인류를 사랑의 공동체로 부르신다. 죄와 사망, 파멸로 치닫는 자녀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길로 이끄신다. 그 방법도 사랑이다. 언약을 주시고 아들을 보내 성육신과 십자가의 섬김으로 증거하셨다. 말씀과 성령으로 동행하시며 인도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세우신다. 주도 하나요,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며, 만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의 하나됨을 지켜야 한다. 이기적인 죄성은 분노와 미움, 정죄와 처벌을 요구하지만 정죄와 처벌은 하나님의 몫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자녀들을 화평의 줄로 묶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와 공동체, 신자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름은 싸움과 분열이 아니라 더 나은 완성을 위해 하나가 되라는 하나님의 지혜의 선물이 아닐까? 왜 다름이 주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가? 오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신자들끼리도 싸우고 갈라진다. 분노와 증오의 소리가 넘친다. 은혜 받은 자의 온유와 겸손, 용납과 화평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덕목이 아직 남아있는가? 구원을 입은 신자라면, 십자가의 주님을 본다면 왜 참고 용납하지 못하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며 사랑의 짐과 자기 십자가를 질 수는 없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와 계획 아래 있지 않은가?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믿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사랑의 하나님, 온유와 겸손, 인내, 용서와 화평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대 말씀과 성령으로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 되며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게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멸시하고 죽이는 세상의 미혹과 주장, 악한 논리를 벗어나 생명을 살리며 사랑으로 용납하는 자녀들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먼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회개하고 사랑으로 돌이키게 하소서. 모든 것 위에 계신 주의 사랑과 지혜를 배우며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 이 시대 넘치는 반목과 증오, 불신과 분열이 사라지고 믿음의 자녀들과 공동체가 온전히 일어서게 하소서. 오늘도 신실한 성도의 겸손과 온유의 삶으로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그의 나라와 의를 증거하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