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 예레미야는...(렘20:7-18)
유명한 예레미야의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속였고 나는 하나님께 당했다고 탄식한다. 주께 순종하여 참된 말씀을 전하는데 세상은 조롱하고 배척한다. 친구들까지 그를 죽이려 한다. 성전 감독에게 잡혀 형틀에 매이기도 했다. 낙심하고 절망한다. 아프고 지친 마음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다. 더 이상 주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말씀이 그의 안에서 타오르는 불같아서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는 소명, 그러나 고통스러운 그의 사역과 인생을 생각한다.
이 시대 신자의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감사와 기쁨이 넘치다가 어느 순간에는 불평과 원망, 낙심과 절망으로 급락한다. 영혼의 깊고 어두운 밤을 만난다. 예레미야도 그런 아픔 속에 있다. 내가 하나님의 꾀임에 넘어가 오늘 이렇게 고통을 겪는다며 탄식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하나님을 찬양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영원한 구원과 영광의 주 하나님을 찬양한다. 보통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찬양이 끝나고, 다시 그는 자신의 출생을 저주한다. 왜 나는 태어나 이렇게 수치와 고통의 날들을 보내는가?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현실, 고통의 부르짖음과 신음이 다시 터진다. 이렇게 탄식과 기쁨이 반복되는 것이 기도하는 신자들의 현실이 아닐까? 오늘 우리도 마냥 기뻐하거나, 마냥 탄식하며 살 수 없다. 조롱과 수치, 배척을 당하며 이 시대 많은 사역자들도 그렇게 부르짖고 탄식할 것이다. 신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악한 현실을 어떻게 견딜까? 혹시 최악의 상황, 즉 그런 고통을 피해 현실에 안주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나는 아픔을 주 앞에 쏟아놓으며 기도하는가?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고통의 현실을 이겨야 하지 않는가? 구원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며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은혜로 감싸주시지 않겠는가?
은혜의 하나님, 한없는 사랑과 공의의 손길로 자녀들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고통에 부르짖고 신음합니다. 주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깨우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반항하는 자녀들도 불쌍히 여기시며 품으심을 믿습니다. 오늘 고난 속의 자녀들에게 피할 길을 주소서.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용기를 허락하소서. 시대의 고통을 넘어 영광의 그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믿음과 소망의 눈을 뜨게 하소서. 변치 않는 사랑과 섭리의 손길로 지금도 일하시며 함께 하심에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주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오늘의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소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