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11)

되어지는대로 2024. 3. 6. 06:07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46:1-11)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환란 속의 선민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피난처이시며 구원의 주이시다. 재앙 앞에서 그들의 일은 가만히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의 교훈은 다르다. 비전과 꿈, 희망과 용기를 품고 고난에 맞서 싸우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 하신다. 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보고 알라 하신다.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이시다. 만물과 사람은 주에 의해 있게 된 존재들이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것은 하나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닐까? 주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라는 것은 피조물인 너희 사람의 사람됨을 알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므로 신자는 먼저 주께 집중하며 잠잠히 있어야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은 출애굽기에도 나온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당했다. 뒤에는 적들로, 앞에는 홍해 바다로 갇혔다. 그때 모세를 통해 주신 주의 말씀이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마른 땅을 걸어서 홍해를 건넜다. 건넌 후 바다가 넘치며 따라오는 군대를 삼켜버렸다. 주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았다. 그처럼 세상의 문제와 위기 앞에서 신자의 일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중단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닐까? 시선을 세상의 문제에서 돌려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문제를 껴안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하는 것이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다. 풍랑 속에서도 잠이 드신 예수처럼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면 눈을 뜨는 새벽에 그는 주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선악과를 먹은 우리에게는 그런 삶이 불가능하다.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환경과 조건, 밀려오는 일들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책임지려는 삶이 당연하다. 태초의 아담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에덴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렸다. 그처럼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은 선악과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며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서 사는 것이다. 오늘 내 마음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디를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리며 아버지의 아버지 됨을 깨우치고 그 뜻을 받아들이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처럼 우리도 하늘의 아버지를 떠나 혼돈과 공허의 나라에서 환란을 당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말씀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잠잠히 그리스도의 나라,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길을 바라봅니다. 우리 마음도 하늘 아버지의 집에 이르게 하소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그 영광을 보고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