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낙심하는가(시42:1-1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절박하게 물을 찾는 동물처럼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갈증에 허덕인다. 고통 속에 낙심한다.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낙심할까?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은 지금까지 다른 것에 소망을 두었다는 것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과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치 있는 것을 잃었을 때, 혹은 욕구를 채우지 못할 때 낙심한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돈이나 권세, 명성, 건강 등을 잃을 때 상실감과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물론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가 낙심할 때 그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조롱한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그 역시 세상을 좋아하며 소원했을 것이다. 돈이나 명성, 건강 등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상실했을 때 그도 그들과 똑같이 낙심했을 것이다. 그를 보며 세상은 비웃었을 것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자신이 주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았음을 알았다. 자기 안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알고 갈급하게 주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다. 이미 은혜의 주를 알고 있는 내 영혼이 어찌하여 주를 잊었는가? 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낙심하며 불안해하는가? 그렇게 스스로 탄식하며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도 세상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 낙심한다. 불안과 고통을 겪는다. 과연 내 영혼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을까? 여전히 돈과 건강, 명성 등 육신의 형통에 소망을 두고 만족과 낙심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믿음의 자녀들에게 소망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있다. 유일하게 스스로 계시며 존재의 근원이신 주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그 주체성을 잊거나 간과한다면 그리고 지금 낙심하고 있다면 과연 믿음이 있는 것일까? 말뿐인 믿음이 아닌가? 시인처럼 세상의 조롱을 당하지 않을까? 그는 먼저 하늘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마음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옮기며 주를 만나야 한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평강과 기쁨으로 갈급한 마음을 채워야 한다.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고 하나님께 대해 완전히 사는 것이 하늘 아버지께서 연약한 자녀들에게 베푸신 구원이 아닐까? 그 자녀들은 날마다 육신에 매인 자기를 부인하며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린다. 도우시는 하나님, 선한 뜻을 이루시는 하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의 기쁨과 소망, 그 사랑과 은혜로 사는 천국 자녀의 특권을 과연 오늘 나는 누리며 사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육신의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 마음도 사랑으로 채우소서. 성령을 허락하소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선하신 뜻을 땅에서도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님 안에서 항상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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