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아기를 절반씩 나눠서 주라(왕상3:16-28)

되어지는대로 2024. 4. 10. 06:07

아기를 절반씩 나눠서 주라(왕상3:16-28)

 

   솔로몬의 지혜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두 여인이 동시에 아기를 낳았다. 한 아기가 죽었다. 남은 한 아기를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한다. 증거도 증인도 없었다. 왕에게 와서 판단을 구한다. 왕은 칼을 가져오라 한다. 아기를 둘로 나눠주라 한다. 한 여인은 아기를 살려 저 여인에게 주라고 했다. 다른 여인은 차라리 아기를 죽이라 했다. 아기를 살리라는 여인이 진짜 어미라고 왕은 판결했다. 온 이스라엘이 이 판결을 듣고 하나님의 지혜가 왕에게 있음을 알고 왕을 두려워했다. 이 재판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 사건은 소유에 관한 재판으로 보이나 사실은 지혜의 본질에 관한 가르침인 것 같다. 솔로몬은 누구의 것인지 따지는 소유의 문제를 사랑의 문제로 바꾸었다. 한 여인은 소유를 포기하고 사랑을, 생명을 택했다. 아기를 죽이라고 한 여인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다른 이의 것도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명을 소유의 가치로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악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서로 싸우지 않는가? 자기 것이 없다며 분노하는 사람들, 열등감과 상실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말과 행동들이 그렇지 않은가? 내 것이 아니면 너도 가지지 말고 너도 나처럼 아파보라는 것이 그들이 고집하는 정의이며 저주받은 세상의 가치인 것 같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런 악한 인생들에 진노하며 탄식하실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유가 다 주께 속한 것인데 그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는 생명과 사랑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라는 것이 아닐까? 만유의 주 하나님은 사랑이며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기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 한나처럼, 아기 모세를 나일강에 떠내려 보낸 요게벳처럼 소유권이 내게 있지 않고 주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가 아닐까?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는 마음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하나님처럼 되려는 태초의 죄. 곧 선악과를 먹고 자란 인생의 열매일 것이다.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자기를 고집하며 차라리 죽여라, 배를 째라 외치고 있다. 창조주를 등진 악한 세상 환경에 의해 강요된 어리석음이다. 사랑이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보이고 들리는 세상과 육신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끓임없는 분노와 미움, 좌절,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는 세상에 대해 이미 죽은 자이기에 그런 집착이 얼마나 헛되며 본분에 어긋난 것인지 안다. 본래 내 것이 아니며 결국은 사라질 세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참 기쁨과 만족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며 얻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우리가 소원할 것은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와 결합하며 주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망에 마음이 접속하는 것이다. 오늘도 사랑과 지혜의 원천이신 주 하나님께 그 사랑과 지혜를 받아 혼돈과 공허와 어둠의 세상을 이기며, 그의 나라가 임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주 하나님, 사람들은 여전히 주를 등지고 미혹 가운데 혼돈과 어둠의 땅을 살아갑니다.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으로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천국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세상과 육신에 매인 자기를 부인하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자기를 얹으며 그의 부활과 승천을 따라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부패한 세상과 육신의 요구를 이기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