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2:13-3:5)

되어지는대로 2024. 8. 30. 06:36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2:13-3:5)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며 은혜 가운데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불의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원해주시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다.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미련도 없다.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다 드렸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지불할 마음이 없다. 그는 세상에 대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을 생각한다.

 

   처음부터 성경은 인류가 죄와 죽음의 저주에 묶였고 땅도 저주를 받았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에덴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땀 흘리며 수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을 떠나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하나님처럼 되기로 택한 인류는 에덴을 잃었다. 저주받은 땅에서 먹기 위해 수고하며 경쟁해야 한다.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기 위해 서로 죽이며 싸운다. 비슷한 자들끼리 뭉친다. 더 잘 먹기 위해, 또 놀기 위해 열심히 일하라 요구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소명을 따라 일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먹는다. 은혜로 선한 일을 하며 받은 은혜로 살아간다. 하늘의 선한 소망과 위로를 얻는다. 땅을 떠나 하늘에 오르신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굳게 붙잡는다. 핍박과 환란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거룩과 경건을 실현한다. 그런 성도들은 늘 세상에서 소수자였다. 그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도, 사도들도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주께서 구원하신다. 그 영광을 본 성도는 세상의 요구와 조롱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 마음에 세상과 자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가 보인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그 주권과 선하신 뜻을 바라본다. 성도는 그 믿음과 소망으로 하늘 아버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하늘에서 받는 평강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육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이웃에게 사심 없이 나눌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 아닌가? 물론 불의의 세상과 악한 자들의 공격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악을 악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선한 일을 하며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잘 믿는다는 신자들조차 세상에서 다수가 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면 십자가의 주님을 떠난다. 그 이름을 이용해 부패한 육신의 길로 빗나가며 저주받은 땅의 영광을 추구한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안주한다. 다시 땅에서 바벨탑을 쌓으며 만족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육의 영광을 추구하는 빗나간 믿음이 기독교 종교의 반복되는 실패가 아니었나?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우리 마음이 위로와 소망의 하늘 아버지를 만나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온전한 믿음과 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소망의 하나님, 저주받은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와 타락의 길을 떠나 영생과 진리의 길에 오르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이끄시는 십자가의 길을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 마음에서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우리 삶의 현장에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성취되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으나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