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밤에 나갔을까(느2:11-20)
왕의 명령을 받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다. 아직 아무에게도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밤에 몰래 시찰을 나간다. 현장을 보려면 낮에 가는 것이 좋다. 제사장, 관리 등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밤에 홀로 움직였다. 왜 그랬을까? 반대파를 의식했을까? 어차피 악한 세력은 꼬투리를 잡아 계속 저항하지 않을까? 그 후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왕의 도움으로 온 사실을 말해 준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 성벽을 재건하자고 한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관원이었다. 늘 왕의 마음을 살피며 그 뜻을 알고 순종했다. 왕과 왕비의 사적인 자리에서도 그들의 마음에 밀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도 그렇게 밀착했다. 그 마음을 느끼며 소원을 품고 기도했다. 그 삶에 반전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안색을 살피며 그를 돕게 하셨다. 느헤미야는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며 소원을 들어주시기만 바라지 않는가? 누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며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쓰는가? 그러나 그는 선민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느꼈다. 아무도 몰래 하나님께서 마음을 쓰시는 예루살렘의 현장에 가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느끼며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이다. 낮에 사람들과 함께 갔다면 아마 여러 사람이 그의 길을 간섭하며 또한 의견들이 분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페르시아 왕의 권위로, 또 현실의 곤경을 파악하고 권고의 말을 시작했기에 그들의 호응이 쉽게 일어난 것이 아닐까? 그런 마음조차도 그가 하나님을 항상 먼저 의식하며 동행했기에 얻은 것이 아닐까? 자기나 혹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익보다 먼저 창조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마음, 그 뜻을 구하는 자가 주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믿음의 사람이다. 예수께서 새벽에 혹은 밤 중에 홀로 나가 기도하신 것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신약 시대인 오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시선은 항상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늘의 아버지를 만나려면 보이는 세상과 육신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에 닿으며 그의 사랑과 기쁘신 뜻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성도의 삶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잠잠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 사랑과 기쁨에 접속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그 뜻을 땅에서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랑하시는 예수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며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이끄심을 감사합니다. 세상과 육신에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 접속하며 그 흐름을 따르는 삶이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홀로 기도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은 우리도 각자 주님을 본받아 온 마음을 아버지께 드리며 소명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따라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살며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늘 십자가의 주님을 잊지 않으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오늘도 선하신 뜻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을 구합니다. 죄와 저주의 길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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