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소발의 분노와 정죄(욥11:1-11)

되어지는대로 2021. 10. 22. 08:56

소발의 분노와 정죄(11:1-11)

 

소발도 욥을 책망한다. “말이 많으니 답을 해야 하지 않는가? 말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겠는가? 속 빈 자네의 말에 사람들이 잠잠히 있겠는가... 자네가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자네가 전능하신 분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하늘보다 높은데 자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도 욥의 결백을 믿지 않는다. 모르고 이해할 수 없어도 네가 무죄한 것은 아니다, 너는 무조건 하나님께 빌라 말한다. 그의 잘못을 생각한다.

 

소발의 말도 맞는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람이 파악할 수 없는 분이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는 무조건 수용하며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판단에, 욥의 큰 재앙은 욥에게 큰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과 탄식은 그저 말이 많은 것이고 교만하며 허황된 것이라 책망한다. 그러나 소발의 정죄는 옳지 않다. 욥은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발은 진실을 모르면서 자기 소견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다. 그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일은 세상의 상식으로 판단하며, 모르는 부분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자는 일견 합리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자기 마음대로 경계를 정해서 제한하는 것이다. 작든 크든 모든 일의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피조물은 먼저 하나님께 묻고 들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스스로 판단과 정죄를 주도하며 고난과 갈등에 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다.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선악을 판단하고 높아지려 하며 결국 죄와 사망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고 그 생각과 뜻을 받아 순종하며 허락하신 복을 누리는 것이다. 먼저 마음과 뜻,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를 통해 접하는 세상을 더 사랑한다.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규정하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동원한다. 사탄의 거짓말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며 살았다. 아직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곧 하나님을 만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소발처럼 세상의 상식, 사람의 전통과 관습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십자가로 열어주신 영생과 진리의 좁은 문, 성령이 이끄시는 은혜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여전히 죄와 사망의 땅에서 매인 자녀들에게 세상을 벗어나 천국에 이르는 구원의 문을 열어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라 온전한 믿음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어리석은 생각과 느낌, 의지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공의를, 그 생각과 뜻을 깨우쳐 알게 하소서, 언제 어디에서나 아버지 앞에 있음을 의식하며 온전한 천국 자녀의 바른길을 걷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오늘을 감당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