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따져보고 나를 따르라...(눅14:25-35)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다.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부모와 처자, 형제, 자매와 자기 목숨이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중 누가 탑을 세우려 한다면 먼저 완공할 때까지 비용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보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포기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를 따라 영생의 길을 가려면 세상의 소유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간과한다. 오히려 세상에서 잘 살고 더 많은 소유를 얻기 위해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는가?
예수가 세상에 몸으로 오신 목적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죄와 사망에 매인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해서다. 공생애 및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은 제자들을 더 많이 모으며 우리가 기대하는 세상 조직의 부흥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중들이 예수께 모여서 환호할 때, 예수님은 그들을 거부하며 흩으셨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땅에서 형통한 삶과 육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를 찾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것을 거부하셨다. 정치적, 경제적 형통이나 무병장수 등의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별세의 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요구하셨다. 이처럼 예수를 따르는 구원의 길은 세상이 보기에는 고통스러운 길이다.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는 원래 공짜가 아니었나? 왜 그런 조건이 필요할까? 물론 구원은 값없이 주어진다. 그러나 기회비용처럼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새 차를 샀으면 차고에 있는 옛 차는 치워야 하듯이, 새것을 들이기 위해서 옛것들을 치워야 한다. 하나님과 그 나라를 품기 위해서 세상의 것은 마음에서 버려야 한다. 마음과 뜻,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랑은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전에는 믿음의 좁은 길이 힘든 것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어떤 넓은 길보다도 쉽고 편안한 길이었다.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며 선하신 생각과 뜻대로 이루시기 때문이다. 결국 소유를 버리는 것이 참 소유, 완전한 소유를 얻는 길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길에 순종함으로 하늘의 절대 평강과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소원한다.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죄와 죽음에 갇힌 비천한 인생들을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부르시는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과 어려움이 오히려 영생의 부르심이며, 좁고 험난해 보이는 믿음의 여정이 오히려 감사와 기쁨의 하늘길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의 말씀과 성령으로 이끄시며 천국의 영광으로 오늘 우리 마음을 채우게 하소서. 오직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삶의 현장에서도 아버지의 주권과 선하신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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