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담은 질그릇과 빈 도자기...(고후4:1-12)
바울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신자들을 비유한다.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란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질그릇과 세상이 좋아하는 도자기를 생각한다.
바울은 신자를 도자기가 아닌 질그릇으로 비유한다. 세상은 질그릇보다 도자기를 귀하게 여긴다. 만들 때부터 조금의 흠도 용납하지 않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버린다. 사실 도자기는 장식용이며 보관용이다.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질그릇은 천해 보여도 괜찮다. 용도, 즉 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중요하며 필요하다고 믿는 것을 마음에 담는다. 돈이나 권력, 명성 등을 가장 좋은 보배로 여기며 마음에 담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신자는 다른 보배를 담는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 즉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담는다. 부활의 생명이 그 안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부패한 세상과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계신 창조주께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통해서 영이신 하나님의 뜻과 능력이 나타난다. 죽음 앞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스테반과 사도들처럼 담대하고 강건하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스스로를 도자기라고 여긴다. 자기 의가 드러나고 세상에서 자기가 영광을 받기 원한다. 돈과 권력 등 세상의 보이는 가치들을 마음에 품는다. 그리고 믿음을 자기 소원을 성취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여긴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믿음의 삶을 말한다.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고 다니는 삶이다. 그렇게 삶의 모든 현장에서 스스로 세상에 대해서 함께 죽을 때,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며 참 생명의 전도, 그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진다. 그를 통해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성취된다. 과연 나는 본래 연약한 질그릇임을 알고 있는가? 오늘 내 안에는 어떤 보배를 담고 있는가? 그 보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세상과 육체를, 이기적인 나를 이기며 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무한한 능력과 은혜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조물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혜와 능력, 생명과 진리가 오직 주께 있습니다. 미혹과 착각에 빠진 인생들은 스스로 악한 판단을 따라 죄와 사망의 길로 향하지만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녀들은 생명의 길로 돌이킴을 믿습니다. 오늘도 보배로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마음에 담고 영생의 길을 바라봅니다. 세상 가치의 헛됨을 깨우치며 흔들리지 않기 원합니다. 하늘 아버지와 천국의 있음과 좋음만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대상임을 고백하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불멸의 영생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보배를 의식하며 구원의 은혜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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