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을 떠난 유다....(창38:1-11)
유다가 자기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들에게 갔다.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고 아들을 얻었다. 아들이 결혼했으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고 죽었다. 작은 아들도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고 죽는다. 셋째 아들도 죽을까 염려한다. 계대결혼의 풍습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시련을 생각한다.
요셉 이야기 중에 유다의 이야기가 끼어있다. 유다의 영적인 상태도 보라는 것이다. 그는 윤리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세겜의 속임수와 살인, 르우벤의 서모 사건, 아버지의 편애와 차별, 동생의 인신매매 등 선민 가정의 악한 현실에 아마도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폭 조직과도 같은 형제들을 떠난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을 겪는다. 가나안 여인인 아내는 세 아들을 낳고 일찍 죽었다. 그의 가정도 역시 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아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죽었다. 며느리 다말은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창녀로 가장해서 자신을 유혹했다. 씨를 받아 선민의 아이를 잉태했다. 그녀는 자기 인생, 여인으로서 정상적인 결혼 생활과 행복을 포기한 것이다. 왜 그렜을까? 아마 야곱의 가정에 들어와 알게 된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관계, 즉 여호와 신앙을 유지하며 언약 자손의 가계에 남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하늘의 영광을 위해서 홀로 살며 패륜의 낙인까지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유다는 깨닫는다. 이방 여인 다말의 믿음, 여호와를 향한 사랑이 자기보다 훌륭했다. 선민 야곱의 아들보다 이방인 다말이 오히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간절한 믿음의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 올려놓으셨다. 과연 오늘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천국을 정말 믿고 사모하는 자녀들인가? 선민이지만 선민답지 않은 유다의 탄식처럼 이방인이 나보다 더 의로운 것을 보고 있지는 않나?
거룩하신 주 하나님, 사랑과 은혜의 손길로 지으시고 구원하시며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언약의 가계로 들어오기를 사모하는 자들도 천국 영생의 자녀로 품으시며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심을 믿습니다.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시며 긍휼히 여기시고 상을 주실 것도 믿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낮추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에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조롱과 유혹, 협박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나라와 의를 구하며 찾으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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