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바울의 이해타산과 기준(빌1:12-21)

되어지는대로 2023. 1. 11. 06:46

바울의 이해타산과 기준(1:12-21)

 

   “형제들이여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또 어떤 이들은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나는 이것으로 기뻐하고 또 기뻐할 것입니다... 지금도 담대하게 내가 원하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이익과 손해의 기준이 다르다. 바울의 기준을 생각한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 빌립보 교인들이 걱정하며 후원금을 보냈다. 답례로 보낸 편지가 이 빌립보서다. 그는 옥에 갇힌 일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하다고 한다. 로마의 군인들과 관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마음이 약한 신자들이 자기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또 그를 시기하는 자들도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니 결국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기준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께 유익하면 자기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죽는 것조차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면 자기에게도 유익한 일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에 대해 감사를, 그리고 그들을 향한 사랑을 전한다. 그들이 복음에 동참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이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지고 가장 선한 삶, 즉 그리스도께 유익한 삶이 최선임을 분별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살아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오늘 우리에게 이익과 손해의 기준이 무엇일까? 많은 돈과 성취, 명성, 안락한 삶이 정말 유익한 것일까? 예수의 공생애, 바울의 선교적 생애처럼 가난과 실패, 무력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면 오히려 유익한 것이 아닐까? 세상의 성공, 많은 재산과 바쁜 비즈니스, 육신의 쾌락 등이 주님의 십자가를 잊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실패이며 손해가 아닐까? 바울처럼 우리도 천국 자녀의 이해타산, 즉 항상 기쁨과 범사의 감사로 소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좋으신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어떤 것도 아버지의 좋으심과 그 영광을 가릴 수 없습니다. 영원한 사랑과 기쁨의 창조주이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녀들은 그 영광을 보기에 세상과 육신의 미혹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오늘도 참 평강과 기쁨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성령으로 덮으사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자녀의 기쁨과 감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그 영광을 보고 누리며 찬양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