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크게 반역을 했습니다(애1:18-22)
“여호와여 보십시요! 내가 고통 가운데 있고 내 내장이 끓어오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뒤집히는 것은 내가 크게 반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밖에는 칼의 살육이 있고 집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내 대적들이 내 고통 소리를 듣고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즐거워합니다. 주께서 선포하신 그날이 오게 하셔서 그들도 나처럼 되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이 주 앞에서 드러나게 하소서.” 죄를 자복하지만 원수에 대한 증오의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원수들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고통 속에서 성도의 마음을 생각한다.
선지자의 고통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다. 택하신 선민이 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았다. 반역했다. 세상의 풍요와 번영, 쾌락 등 이방인들이 구하는 가치와 우상들을 좋아하며 따랐다. 거룩한 백성의 소명을 떠나 오히려 주의 이름으로 탐욕과 정욕의 삶을 추구했다. 그러므로 진노가 쏟아졌다. 이스라엘에 이어서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졌다. 칼의 살육, 죽음이 도처에 넘쳤다. 이미 주는 떠나셨다. 그의 분노와 고통이 극에 달한다. 대적들도 심판하시기를 원한다. 물론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섭리적 소모품일 뿐이다. 선민의 징계와 회개에 필요한 역할을 마치면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도 망할 것이다. 역시 반역의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선지자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는가? 마음 깊이 숨어있는 반역의 속성이, 진노와 심판, 고통의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가? 그래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수난을 겪지 않으셨는가? 그러나 주님도 스테반 집사도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원수를 긍휼히 여기는 믿음이 어떻게 가능할까?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복음의 능력, 성령 충만의 결과가 아닌가?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반역의 마음이 죽고 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종의 마음이, 그리고 하늘의 절대 평강과 사랑이 우리 마음에도 부어지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보이는 세상과 물질이 전부가 아니며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가 세상 나라의 경계인 주님의 십자가 너머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의 낙원이 사실이며 비록 볼 수는 없으나 지금 우리 앞에 있음도 믿습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성도들은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도 주님과 함께 죄와 사망의 땅을 벗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르기 원합니다. 하늘의 평강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오늘을 채우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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