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원수가 되어 이스라엘을...(애2:1-10)
“주께서 마치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집어삼키셨다... 정원의 초막을 허무시는 것같이... 파괴하셨다. 시온에서 정한 절기와 안식일이 잊혀지게 하셨다. 맹렬한 진노로 왕과 제사장을 쫓아내셨다. 그분의 제단을 거부하셨고 그분의 성소를 버리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셨다. 선민을 악한 이방인들에 넘겨주셨다. 거룩한 제단과 성소를 버리셨다.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원수가 되신 상황을 생각한다,
절망뿐이다. 주께서 선민을 악인의 손에 넘기셨다. 수치와 죽음 외에 남은 것이 없다. 예배도 기도도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끝은 아니다. 끝이라면 수 천 년의 기록, 성경 말씀이 남아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땅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이어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도들,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다. 아브라함이 본 주의 영광이 믿음을 지키는 자들, 남은 자들에게도 계시되었다.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원수는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으며 그 뜻에 반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진노와 심판을 당한다. 그러나 은혜로 택하시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는 땅에서 열린 구원의 문을, 하늘나라 영생의 길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에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이 그것을 증명한다.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의미한다. 세상을 향한 육신의 집착과 미련을 완전히 버리는 죽음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바라고 의지할 때 그 죽음에서 새로운 소망의 빛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세상과 육체의 종에서 탈출하는 죽음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다. 세상에 대한 철저한 절망이 있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 나라를 소원하지 않겠는가? 집을 떠난 탕자도 철저한 절망 속에서 돌아갈 집과 아버지를 기억하지 않았는가?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죽음에 연합함으로 세상에 대해 죽고, 또한 주님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아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이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과 공의의 주 하나님, 집을 떠난 자녀들을 끝까지 추적하시며 구원의 길로, 영생의 자리로 돌이키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셨지만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혼돈과 어둠을 택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 한없는 사랑과 죄 사함의 은혜를 확증하셨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 원수의 자리에서 벗어나 천국 자녀의 길에 들어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긍휼과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성령을 따르며 믿음과 소망을 이루는 온전한 삶으로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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