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추앙을 거부한 바울과 바나나(행14:1-18)

되어지는대로 2023. 7. 24. 06:12

추앙을 거부한 바울과 바나나(14:1-18)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었다. 그가 복음을 듣는 것을 바울이 보았다.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일으켰다. 그가 서서 걸었다. 사람들이 소리친다.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라 부르며 제사하려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자신을 낮추었다. 우리는 사람에 불과하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라고 외쳤다. 간신히 제사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의 교훈과 믿음을 생각한다.

 

   비슷한 사건이 베드로에게도 있었다. 그도 전력을 다해 사람들이 자기를 높이는 것을 막았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자기를 높이거나, 높여지는 것을 허용하면 그는 믿음을 벗어나며 이단의 괴수가 된다. 사실 그의 능력으로 치유가 일어난 것도 아니다. 주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않고 자기가 받는다면 그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다. 사람은 누구도 스스로 신이 될 수 없다. 은혜가 없다면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구원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죄 사함과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입었다. 이방 선교의 사명을 받았다. 다시 죄인의 길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을 때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 일부러 자기를 더 낮춘다. 유대인들이 군중을 선동해서 그를 돌로 치는 사건이 이어진다. 그는 일부러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는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죽기까지 맞았다.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그를 성 밖에 던졌다. 얼마 후 그는 일어나 말없이 성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철저히 자기를 낮추었다. 잠잠히 삶을 주께 의존했다. 다음 날 루스드라를 떠나 더베로 가서 말씀을 전한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닐까? 오늘 우리는 그 믿음의 길을 따르는가? 세상에서 내가 더 높아지는 기쁨을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닌가? 과연 바울처럼 자기를 부정하며 오직 감사함으로 믿음의 길을 걷는 신자들은 얼마나 될까?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주께 있으니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주께 경배와 찬양을 올립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 뜻대로 우상을 세우고 환호하는 것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주를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죄를 깨우치며 구원하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인자로 오신 예수의 그리스도 사역으로 여신 하늘 구원의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 말씀을 잊지 않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순종의 삶으로 따르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