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로...(행25:1-12)
바울은 가이사랴에 갇혀 있다. 새 총독이 부임했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 한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재판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총독이 바울에게 묻는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재판을 받겠느냐?” 바울이 답한다. “만일 내가 사형받을 만한 죄를 지었다면 죽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누구도 나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나는 가이사에 상소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한다. 그 의미를 생각한다.
유대인들에게 바을은 증오의 대상이다. 민족의 자부심, 모세의 율법과 전통 등을 그가 무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 전도의 사명도 받았다. 대제사장과 공회의 지도자들은 기록된 율법의 문자적 수행만 고집할 뿐 실제 하나님과는 마음이 멀다. 기득권자의 시기와 질투로 이미 예수를 죽였다. 이처럼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은 유대교 종교에 갇힌 이스라엘로부터 바울이 떠나는 과정이 길게 이어진다. 하나님과 복음이 세상에 속한 유대교 종교 집단과 결별하는 과정이 아닐까? 믿음의 본질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닐까? 믿음은 세상에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와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마음이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이르며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유대교의 예루살렘을 떠난다. 로마로 간다. 하나님께서 보내신다. 복음을 세계로 전파하게 하신다. 바울이 오래 총독부에 갇혀 있던 것은 하나님의 배려였다. 10여 년의 선교여행은 그를 탈진하게 했을 것이다. 극렬 유대주의자들의 살해 위험에서 그를 보호하며 쉬게 하셨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는다. 이미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죽었다. 바울은 로마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은 세계로 퍼져나간다. 하나님 나라는 영광의 그날까지 확장될 것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는가? 먼저 내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드리며, 그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오늘 나의 것으로 삼을 때 감사함으로 소명의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늘의 주 하나님. 세상은 주가 지으셨고 주의 뜻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사람이 집착하며 자기 의와 뜻을 이루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고집한다면 주의 뜻을 망칠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고 기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생각과 뜻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전통과 관습, 고정 관념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따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익숙한 예루살렘의 전통과 관습을 고집하지 않으며, 유일한 길과 생명,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연결되게 하소서. 그 나라를 구하며 소명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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