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음녀의 집에 들어갔다(잠7:1-27)
계명을 지켜라, 지혜와 명철을 놓치지 말라 반복해서 명한다. 유혹에 걸리는 청년을 예로 든다. 어스름할 때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길거리에서 청년을 유혹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가 화목제를 드렸는데 오늘 당신을 만나 소원을 이루었답니다. 집에 고기가 있고 이집트의 고급 천으로 씌운 침대에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 향도 뿌려놓았지요. 와서 우리 아침까지 깊은 사랑을 나눠요. 우리가 서로 사랑을 즐겨요.” 그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녀의 화목제와 고기, 사랑의 유혹을 생각한다.
지혜를 추구하라는 문맥이다. 음행은 윤리적 문제가 아닐까? 지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본문의 음행은 다른 것 같다.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화목제를 드렸다고 한다. 화목제는 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를 의미한다. 제물을 완전히 바치는 번제와 달리 제물로 드린 고기를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다. 사람들이 기쁨의 잔치를 벌이며 즐기는 것이다. 그녀는 그 기쁨을 함께 누리자고 청년을 유혹한다. 육신의 쾌락을 당연히 여기며 우리 함께 즐기자 한다. 빗나간 사랑을, 음란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제사를 들먹이며 간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고대 이방의 신전에서 사람들이 신녀와 섹스를 즐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사실 이 시대에도 그런 유혹이 있다. 하나님께 정성으로 예배했다 말하며 세속의 행복, 육신의 쾌락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즐기자고 유혹하지 않는가? 이미 죄 사함의 구원을 받았고 깨끗하다며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이단도 있다. 여전히 세속의 돈과 권력, 명성, 쾌락 등을 추구하며 십자가의 예수를 떠나는 신자들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신의 현실을 모르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연 오늘 우리는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울까? 교회에 출석하며 예배와 헌금을 했다는 이유로 세상의 복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면,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 시험에 걸린 현실을 모르고 청년이 음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지옥의 길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십자가의 도를, 그 은혜의 말씀을 깨우치며 따르기를, 그래서 믿음을 지키며 영생과 진리의 참 평강과 기쁨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 주의 말씀을 떠나 부패와 타락, 사망의 저주에 걸린 인생들에 진리의 말씀과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베푸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죽음으로 이끄는 악한 유혹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옵니다. 택하신 자녀에게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별세와 하늘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육신의 욕망에서 자유를 얻고 지혜의 말씀에 순종하며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됨의 특권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를 강건하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소명의 길을 가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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