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왕하1:1-9)

되어지는대로 2024. 6. 19. 06:05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왕하1:1-9)

 

   아합이 죽고 아들 아하시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가 중병에 걸렸다. 에그론의 바알세붑에게 사람들을 보냈다. 엘리야가 그들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안 계셔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들은 왕에게 돌아가 그 말을 전한다. 왕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임을 안다. 왕은 하나님을 안다. 그는 왜 이방의 신을 찾았을까?

 

   아마 왕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에그론은 블레셋 땅이고 바알세붑을 섬긴다. 바알세붑은 파리의 바알을 의미한다. 파리가 병을 옮기며 파리의 주인 바알이 병을 관장한다고 믿은 것 같다. 병에 걸려 다급한 왕은 당시 세상의 상식을 따른 것이다. 그곳에 사람을 보내 자신의 병에 대해 물으려 했다. 하나님을 자신의 현실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과 엘리야에 대해 들었다. 예언들은 이루어졌다. 분명히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병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는 하나님을 자신과 관계가 없는 분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죽음을 선언하신다. 선민의 후손이며 그렇게 많이 당신을 계시하셨는데도 여전히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으로는 안다. 그러나 내 하나님으로, 나의 현실로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도 체감하지 못한다. 사실 이 시대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예배는 드려도 실제 삶의 문제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듯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세상 방식을 따라 살지 않는가? 명목상의 종교 생활만 하지 않는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어떤 계열의 사람들은 자기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하나님을 내 판단, 내 뜻을 위해 동원하는 도우미나 우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우상화된 믿음, 혹은 반대로 화석화된 믿음으로 빗나간 것은 아닐까? 자신의 문제와 소원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믿음은 선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체감하는 믿음이 아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우리 모든 일에 관심과 생각과 뜻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식하는 믿음으로 살고 있을까? 내 삶의 현실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세상과 육신을 따르는 것은 아닌가?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접속하며 우리 삶에도 그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무한한 사랑과 지혜와 능력으로 함께하시며 영생의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인 것처럼 선악을 판단하는 삶이 태초부터의 미혹이며 죄와 죽음에 매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계시로 주신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증거를 따라 믿음의 길로 부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의지하며 마음을 드립니다. 죽음으로 세상과 육신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성령을 받고 따르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