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물에 뜬 도끼, 세상 위로 부상하는 믿음의 사람(왕하6:1-14)

되어지는대로 2024. 7. 1. 05:46

물에 뜬 도끼, 세상 위로 부상하는 믿음의 사람(왕하6:1-14)

 

   엘리사의 제자들이 집이 좁으니 더 크게 짓자고 했다. 강가에서 나무를 베다가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다. 빌려온 도끼였다. 엘리사에게 달려갔다.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그곳에 던졌다. 물에 가라앉은 도끼가 떠올랐다. 잃은 것을 다시 찾았다. 이 이야기는 단지 하나님의 돌보시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일까? 당시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영적 의미를 생각한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의 의미를 설명한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다. 이 창조의 영역에 질서와 조화, 결실과 밝음 등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지으셨다. 깊음은 바다를 상징한다. 가라앉는다. 수면 위에 성령이 운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아름다운 세상을 세우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받도록 지으신 사람이 말씀을 거부했다. 영이 떠나고 육체가 되었다. 에덴에서 쫓겨나고 땅도 저주받았다. 말씀으로 구원의 길을 주셨으나 따르지 않았다. 모두 세상에 잠긴 육체로, 고깃덩어리로 살았다. 진노하신 주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 그와 가족은 방주에 들어갔다. 물에 뜰 수 있었다. 물에 가라앉은 도끼는 믿음을 놓친 피조물, 세상의 환경과 조건에 마음이 가라앉은 인류를 의미하지 않을까? 고통의 바다, 죽음에 잠겨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물에 던졌다. 세상에 와서 십자가 나무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 않는가? 그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졌다. 물에 잠겼다가 떠오른 도끼는 세례를 의미하지 않을까? 성령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세례받은 자들, 깊음의 세상에서 떠오르는 신자들을 붙드신다. 당시 아람은 또 이스라엘을 치려 했다. 땅은 기근에 처했다. 제자들도 육신의 아려운 현실을 판단하고 걱정하며 마음이 세상에 매여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집을 크게 지으려 했다. 그런 일도 먼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시작해야 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도 돈과 권력, 명성 등 육체로 만나는 세상의 환경과 조건에 마음이 매여 살아간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물질의 차원 위에 살아계신다. 중력도 상식도 초월한다. 엘리사가 제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주권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제자들은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자기를 부인하며 주께 물어야 했다. 오직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그 뜻을 따르는 삶이 제자의 현실임을 알라는 것이다. 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그 유일하고 절대적 주권을 고백하며 체감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죽음의 바다인 부패한 세상에 가라앉지 않으며 수면 위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을 따르는 상태가 믿음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나무에 달려 던져지신 그리스도 에수의 은혜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소원한다.

 

   만유의 주 하나님, 한없는 시랑과 지혜와 권능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흑암과 깊음 속에 가라앉는 자녀들을 건지시며 영생과 진리의 세계에 오르게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십자가 주님의 은혜로 부활과 승천의 길을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 마음도 이르기를 원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으로 이끄소서. 이 땅에도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 영광을 찬양하며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