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했으나 역시 슬픈 현실 앞에서(느13장)
느헤미야서의 우울한 결말이다. 12년의 예루살렘 총독을 마치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왕의 허락으로 다시 예루살렘에 왔다. 참담한 상황을 목격한다.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암몬인 도비야가 성전에 자기 방을 가지고 있었다. 대제사장의 사돈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노했다. 원상회복시켰다. 아이들이 히브리 말이 서툰 것을 보고 물었다. 엄마가 이방인이었다. 그들이 맹세했던 율법과 규례의 언약을 어긴 것이다. 그가 이룬 회개와 부흥은 성공이 아니었다. 다시 회개와 정결 운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 공로를 기억해 주시고 저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왜 그런 기도를 해야 했을까?
아마 슬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는 선민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지도자들마저도 이방 문화의 유혹, 육신의 욕구 등 시험에 들며 실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께서 금지하신 죄와 저주의 길로 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고 선민들이 그 땅에서 쫓겨날 미래를 예측하지 않았을까? 심히 두려웠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또 당할 재앙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또한 자기는 어떻게 될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 그는 고군분투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신앙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풍요와 번영, 재물, 인맥 등 육신의 복에 빠지며 더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타락한 세상의 영향력을 성벽을 세워 차단했다. 말씀을 가르치며 주 하나님과의 언약도 갱신했다. 순종의 맹세도 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주를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탐심과 정욕을 버리지 못했다. 우상들과 시대의 풍조를 따른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기를 소원한다. 저주받은 땅의 육성에 젖은 마음은 주께 돌아오지 않았다. 잘 믿는다는 지도자들조차도 성전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부풀리려 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도 상인들을 성전에 들이며 돈을 위해 그들과 결탁하지 않았던가? 결국 구약은 하늘로부터 오실 메시야, 곧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연쇄 사건을 바라보는 기록이 아닌가? 예수님도 고군분투하며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 그리스도로서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을 열어주셨다. 제자들의 마음을 저주받은 땅에서 하늘의 아버지께로 이끄셨다. 성령을 받고 그들은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랑, 그 뜻을 알았다. 이제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주 하나님을 선택하며 사랑한다. 외로움과 슬픔, 두려움에 빠진 느헤미야처럼 자기 공로를 들추며 복을 구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대해서는 주님과 함께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어떤 소원도 미련도 없다.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좋으심, 그 완전한 주권과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십자가의 주님을 보지 못했기에 느헤미야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 과연 우리는 세상의 미혹, 끈질긴 육성에서 자유로운가? 주님께서 몸으로 오시고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 승천으로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다. 그 십자가 길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평생의 임무이며 본업이 아닐까? 오늘도 주님을 따라 우리 마음도 하늘의 아버지께 이르기를, 지상의 몸은 성령을 따라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소원한다.
사랑의 주 하나님, 한없는 사랑과 지혜로 죄와 죽음의 저주에 매인 인생을 영생의 길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세상과의 성벽을 세우셨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악함과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밝히 보기 원합니다. 새 언약의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시험을 이기고 구원을 입으며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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