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인애와 진리, 정의와 평화가 만나는 주님의 길(시85:1-13)

되어지는대로 2025. 7. 1. 05:56

인애와 진리, 정의와 평화가 만나는 주님의 길(85:1-13)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선민들이 회복의 소망을 노래한다. 나라는 망했고 땅은 황폐하다. 성전을 재건하며 그들은 다윗 왕국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조상들의 어리석은 길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인애와 진리, 정의와 평화가 함께하는 나라의 소망을 품는다. 어떻게 그런 이상이 가능할까? 시인이 말하는 주의 길을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주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했다. 광야에서 언약을 맺고, 믿음과 순종의 훈련도 받았다. 약속하신 땅에 나라를 세웠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성전과 율법, 제사를 소유했다. 그들은 구별된 나라로 주의 거룩하심. 그 사랑과 공의의 주권을 세상에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심판을 받았다.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다. 70여 년 후 그 땅에 돌아왔다.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돌아가지 말아야 할 어리석은 길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세상의 대상과 관계에 쏟는 것이다. 이방인처럼 풍요와 번영을 추구하며 만족하려는 육의 삶이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등지고 시대의 풍조를 따르며 인간의 지식과 판단을 고집하는 것이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를 하나님처럼 여긴 태초의 선악과, 그 원죄의 결과일 것이다. 피조물이 자기를 주장하며 영원히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교만한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인애와 진리가, 정의와 평화가 만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정의를 말하며 전쟁과 살인을 일삼을 것이다. 진리는 배타적이다. 비진리와 타협할 수 없다. 진리를 위해서는 사랑과 신념, 미련까지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한 심판과 포용적인 사랑은 서로 입맞출 수 없다. 하나가 될 수 없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진보와 보수 등 세상의 이념들도 그렇지 않은가? 늘 싸우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가 되게 하실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주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혼돈과 어둠의 땅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인자로 오셨다. 구원의 새길을 열어주셨다. 한 알의 밀알처럼 당신의 죽음으로 저주받은 땅에서 하늘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셨다. 그 죽음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비대해진 인간 주체성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 별세와 부활의 길에 연합하며 세상을 향한 내 생각과 내 판단, 내 계획, 내 소원을 죽이고 주 하나님의 판단과 뜻을 받아 따르는 삶이 주의 길이며 구원이다. 영원한 나라가 임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땅에서도 성취될 것이다. 사랑과 진리가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하는 길을 성령께서 앞서시며 인도할 것이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그 생명과 진리의 길에 마음이 오르며 하늘의 사랑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를, 몸으로는 이 땅에서도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랑과 공의를 이루신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 자녀로 부르시며 의의 길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나 오직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가능한 은혜이며 구원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어리석은 육체의 길로 돌아가지 않으며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