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구원의 빛을 등지고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시80:1-19)

되어지는대로 2025. 6. 26. 06:07

구원의 빛을 등지고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80:1-19)

 

  “요셉을 양 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해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죽음 앞에서 드리는 안타까운 기도다. 배경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잔인한 군대에 짓밟힐 때일 것이다. 요셉 지파가 주도해 세운 북 왕국은 처참하게 망한다. 역사에서 사라진다. 선민이 이렇게 참담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한다.

 

  반복되는 구절이 있다. 주 하나님의 얼굴빛이다. 그 빛과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한다. 인간은 빛나는 대상을 찾으며 기쁨과 만족을 구한다. 은혜를 입은 선민은 늘 하나님의 빛을 추구할 것이다. 그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그 영광이 빛나야 한다, 그 이름에 조명이 비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대상에 조명을 비추며 영광을 구하고 있었다. 주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다.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은 분열된다, 요셉 지파의 여로보암은 다른 지파들을 연합해 북 왕국을 세웠다. 백성들이 남 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모신 산당을 세웠다. 금송아지를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라 이름을 붙이고 제사했다. 백성들은 번쩍이는 금송아지를 바라보며 이방인들처럼 풍요와 번영의 삶을 추구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드려지는 상번제의 취지와 의미, 곧 속죄와 회개로 이루는 믿음의 본질을 잊었다. 하나님과 바알 신앙을 겸하여 섬기며 빛나는 금과 은, 곧 보이는 세상과 육체의 기쁨에 소망을 둔 것이다. 출애굽과 시내 산에서 본 영광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세상과 자기 영광을 소원하며 마음을 쏟았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위해 계명과 함께 번제 등 구약의 오대 제사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의 의미를 왜곡했다. 영생과 진리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거룩의 길을 저버렸다.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셨다.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을 외면하셨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200여 년 후 북 왕국은 잔인한 군대의 침략을 당했다. 참혹한 재앙 속에 흩어지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결국 이 기도는 실패한 선민의 기도가 아닌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등지고 세상과 육체에 소망을 두며 헛된 영광으로 만족하려는 삶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결국 치명적인 죽음과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오늘도 새 언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그 생명과 빛의 말씀을 따르며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의 빛 아래 영생과 진리릐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소원한다.

 

  사랑과 구원의 주 하나님, 구원은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육체의 눈과 귀에 좋아 보이는 세상의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그 말씀을 떠난 선민의 참담한 기도를 반복하지 않기 원합니다. 새 언약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 연쇄 과정으로 증거하신 영생과 진리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온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그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길에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 마음도 주님 안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이르며 그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도 그 나라가 임하며 그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며 기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