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나그네들...(벧전1:13-25)
베드로가 말년에 쓴 편지다. 오랜 신앙생활의 결론이며 죽기 전에 새롭게 전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신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라 부르며 이렇게 권면한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각자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로 사는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십시오.” 신자를 거룩한 나그네라 부른다. 왜 나그네일까? 신자는 어떤 행위로 판단을 받으며, 어떤 두려움으로 살아야 할까?
나그네는 정착민이 아니다. 그 땅의 시민권자가 아니다. 그 사회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주류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예수님처럼 그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마음은 땅의 영광에 있지 않다. 하늘 본향을 그리며 돌아갈 날을 준비한다. 세상의 가치, 돈과 권력, 명예 등을 구하지 않는 것은 그 허무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늘의 영광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마를 풀과 떨어질 꽃을 좋아하지 않는가? 죽은 자만 불쌍하다느니,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있는 게 낫다느니 그런 것은 불신자들만 하는 말이 아니다. 천국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산 소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이 좋고 하늘 본향을 그리워하는가? 사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한다. 나그네로 사는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한다. 믿음의 길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있기에 그만큼 위험하다. 세상이 좋고 부귀영화를 마음에 품으면 그는 나그네로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를 수 없다. 그러므로 주께서 판단하시는 행위는 나그네의 행위를 의미한다. 나그네로서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자가 구원에 합당하다. 세상을 좋아하고 그 영광을 구하며, 세상의 주류가 되려는 마음은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은 세상에 푹 젖어서 땅에 속한 자로 남겨질까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베드로가 명하는 나그네 의식으로 오늘 있는 곳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사라질 땅의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말씀에 소망을 두고 즐거워하며 거룩한 나그네의 여정을 가고 있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한 뜻으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구원하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패한 자녀들을 죄와 사망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늘나라를 향한 은혜의 통로를 열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저주받은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로 택하신 은혜를 깨우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산 소망의 여정을 걷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따르며 영원한 나라의 여정에 합류하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오늘 이곳에서 하늘 본향의 시민으로 담대히 당당하게 살아내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며 돌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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