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의 잘못한 서원? 다른 관점으로!(삿11:29-40)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 그가 서원한다. “주께서 암몬 족속을 내게 주신다면 내가 안전하게 돌아올 때 나를 반기러 내 집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감사제만 해도 될 것을, 그는 하지 않아도 될 번제의 서원을 한다. 어떤 사람은 이 서원을, 이기적 욕망을 투사한 잘못된 서원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입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다. 본문 첫 절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기록한다. 성령이 임한 그가 왜 승리를 걱정하고 의심하며, 왜 이기적인 욕망의 서원을 했을까?
인신 제사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다. 그러나 당시 인신 제사는 신에게 드리는 최고의 제사로 여겨졌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이것으로 믿음을 시험하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본문은 입다와 기드온의 다른 믿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는 소심한 기드온처럼 표적을 구하지 않았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라 선언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출정한다. 하나님의 전쟁이기에 승리를 확신한다. 그러나 기드온과 달리 승리해도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믿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기생의 아들로서 낮고 비천한 자리를 감수하며 살아왔다. 지금 비록 높아졌지만,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리를 고수한다. 기드온처럼 승리감과 기쁨에 도취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기드온은 금 에봇을 만들었다. 사실상 왕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많은 아내와 아들만 70명을 낳았다. 그리고 패가망신을 초래했다. 그러나 입다는 승리하더라도 자기를 높이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 비천한 자로 살 것을 다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집에서 나올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 될 것을 알면서도 주께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설사 하인이 나왔더라도 그는 비참한 고통으로 감당했을 것이다. 찬양과 칭송을 받고 싶어하는 자기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낮추며 애통하는 자, 심령의 가난함으로 들어가겠다는 믿음이다. 결국 그는 예수님처럼, 바울과 사도들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가장 낮은 자리. 곧 십자가의 자리를 택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을 받으신 것이 아닐까? 사실 그가 딸로 인신 제사를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율법에 정통한 그가 금지된 제사를 했을 리 없다. 하나님께 인생을 바친 나실인처럼, 그 딸은 평생 처녀로서 성막에서 봉사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구하며 기도하는가? 여전히 높고 강한 삶, 풍요와 번영, 승리감에 도취된 인생을 원하는가? 믿음의 선진들처럼 육신에 묶인 인생의 곤고함을 고백하며 낮은 자리, 곧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흙으로 지어진 육체에 영을 허락하신 은혜를 잊고 주를 떠나 죄와 죽음을 택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영생의 구원은 주께 온 마음을 드리며 성령을 받고 순종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따르며 우리 마음이 부패한 땅을 떠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르기를 원합니다. 가장 낮고 비천한 십자가의 자리가 저주받은 땅을 떠나 하늘에 이르는 통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담대한 믿음으로 육신의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자기 사랑의 덫에서 빠져나와 영생의 나라와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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