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경주, 신자의 경주(고전9:19-27)
바울은 신앙인의 삶을 경기장의 시합으로 비유한다. 힘껏 달려도 상 받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경주자는 승리를 위해서 절제한다. 세상 사람들도 경주한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상을 얻으려고 절제한다. 그러나 신자는 썩지 않을 것을 위해서 절제한다. 신앙의 경주와 세상의 경주는 목표, 즉 결승선이 다르다. 바울은 왜 고린도 교회에 이런 비유를 할까?
고린도 교회가 잘못된 경주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가치들, 돈과 권세와 명성 등을 획득하려는 듯 목표가 불분명한 경주를 하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류는 저주받은 땅에서 각자 경주를 시작한다. 눈앞에 보이는 땅의 것들을 획득하며 만족을 얻기 위해서 달린다. 그러나 땅에는 썩어 없어질 것들뿐이다. 결국 죄와 사망의 저주 가운데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천국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들의 결승선이 눈앞에, 땅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하셨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시고 유일한 좋음이시며, 천국이 그들의 목표이며 도달해야 할 결승선인 것을 깨우치신다. 이제 믿는 자들에게는 경주할 길이 분명해졌다. 허무한 땅의 경주를 벗어나 하늘 아버지와 천국을 향한 믿음의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서 절제하며 세상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렸다. 이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닿기 위해 절제하며 경주한다. 그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길이다. 바울은 이 믿음의 경주에 앞장서며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한다. 육신은 여전히 땅을 향하며 세상의 것들을 소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의 마음은 땅과 육신에서 빠져나와 하늘 아버지를 향하며 소원한다. 영생과 진리의 아름다운 면류관을 바라본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 결승선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육신을 쳐 복종시키며 절제하는가? 바울의 말처럼 허공을 치듯이 공허한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닌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길, 그 통로를 따라 이어지는 영생의 나라를 나는 바라보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를 알게 하심은 태초부터 천국의 자녀로 택하신 주의 은혜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 죄와 사망의 땅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들어가는 이 하늘 여정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영생의 구원을 온전히 이룰 수 있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몸을 복종시키며 남은 삶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부르시고 이끄시는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 안에 끝까지 남으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공부와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조물의 자유와 질서...(고전11:2-16) (0) | 2022.05.24 |
---|---|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고전10:23-11:1) (0) | 2022.05.23 |
소명과 자원하는 마음(고전9:13-18) (0) | 2022.05.19 |
바울의 권리 포기와 권위...(고전9:1-12) (0) | 2022.05.18 |
배려하는 사랑? 훈계하는 사랑?(고전8:1-13) (0) | 202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