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탄식(창42:26-38)
아들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시므온은 없다. 그들은 막내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겠다고 한다. 야곱은 두려워한다. “너희가 내 자식들을 빼앗아 가는구나. 요셉이 없어지더니 시므온도 없어지고 이제는 베냐민까지 데려가려 하는구나. 모두가 나를 괴롭히는구나.” 르우벤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베냐민을 맡겨달라 한다. 야곱은 거절한다. 그 마음을 생각한다.
험악한 인생이 또 그를 찾아왔다. 요셉은 추락을 거듭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형통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 소유물, 그리고 아들들이 삶의 근거이며 만족과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며 살아왔다. 고난의 때에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 축복을 의지하며 가족과 소유를 지키기 위해 씨름하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자기 소원과 뜻만을 고집하는 그를 놓아두시지 않는다. 언약 자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속의 자녀, 선민이기에 더 많은 고통을 겪고 하나님을 찾으며 고집을 버리게 하시는 것일 수 있다. 영생의 축복,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들 베냐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다.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 사랑하는 자기 아들 베냐민을 상실할 두려움에 탄식할 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는가? 모든 소유와 자랑. 그 생명과 인생도 본래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었나? 오늘 나는 세상의 무엇에 의지하며 집착하며 사는가? 모든 것이 주의 은혜와 섭리 안에서 받은 것이고, 또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아닌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모든 생명과 역사, 생사화복이 유일한 주권자이신 아버지께 있음을 믿습니다. 부족한 우리는 여전히 보이고 들리는 세상에서 마음을 떼어내지 못합니다. 온 마음을 아버지께 드리며 온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주님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만 아버지께 나아가며 그 사랑, 그 뜻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나의 죽음을, 또 주님과 함께 부활할 새 피조물을 바라봅니다. 자비를, 은혜를 베푸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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