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전7:1-14)

되어지는대로 2022. 12. 19. 06:40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7:1-14)

 

   “좋은 이름이 좋은 향수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슬픔 어린 얼굴이 그의 마음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슬픔이 기쁨보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고 한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명한다. 그는 왜 슬픔이 더 낫다고 할까?

 

   그의 관점은 사람들과 다르다. 세상을 보는 위치가 다르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길목에서 세상을 뒤로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제대를 앞둔 군인이, 혹은 죄수가 유배지를 떠나며 지난 세월을 생각하는 것 같다. 복역 중인 군인은 입대하는 날보다 제대하는 날이 좋다. 그렇듯 태어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는 것은, 세상살이가 저주의 땅에서 악인들, 수많은 범죄의 현장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세상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좋은 향수보다 좋은 이름이 나은 것은 향수가 육체를 위한 것이며, 육체는 곧 죽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죄와 저주에 젖은 채 만족하는 것은 심판과 멸망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보지 못했다. 구원의 감격, 그 기쁨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믿음으로 천국의 자녀가 된 신자들은 땅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 아버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평강을 누린 스테반이 그렇다. 마음의 만족을 위해 모든 실험을 한 그는 지금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그 마음이 세상을 벗어나 하늘에 오르는 것이며, 그리스도 밖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기 전까지 해 아래의 삶은 차라리 슬픔과 근심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아버지를 만난 자녀들은 영생과 진리를 경험한다. 항상 기뻐하며 기도와 감사로 살아갈 수 있다. 과연 그 은혜를 오늘 나는 누리며 살고 있는가?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말의 의미를, 우리 내면의 악함을 얼마나 의식하며 십자가의 주님께 온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아버지의 나라와 주권이, 그 뜻이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드러나며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육체로 만나는 대상들은 있게 된 존재일 뿐이며 결국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예비하신 영생과 진리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열어주신 하늘 구원의 길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우리도 소명을 감당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사랑으로 세상과 육신의 미혹을 이기며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