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압살롬을 죽였다(삼하18:16-23)
다윗은 장수들에게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명했다. 전쟁 중 말을 타고 달리던 압살롬의 머리칼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나무에 매달렸다. 군사들은 다윗의 명령 때문에 그를 죽이지 못했다. 요압이 달려가서 죽인다. 반란군은 흩어지고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요압은 왕이 압살롬의 죽음을 반기지 않을 것을 안다. 그의 강한 마음을 생각한다.
다윗은 압살롬이 살아있기를 원한다. 요압은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반역했기 때문이다. 전에 그는 압살롬을 그술에서 데려오는 데 앞장섰다. 형을 죽인 그의 죄를 간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용서할 수 없다. 왕의 명령에 불복하면서까지 왕자를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반역은 용납할 수 없으며 이제 압살롬은 자기 윗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일 것이다. 요압은 이미 투항하겠다고 다윗에게 온 아브넬도 죽였다. 아브넬이 자기 지위와 이익에 방해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왕의 명령을 어겼다. 왕이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아마사도 죽인다. 자신에게 불리한 자는 남겨두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능력과 신념을 믿는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왕의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과 권리, 이익을 주장한다. 다윗도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 다윗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요압을 응징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는 결국 아도니야의 반역에 휘말리며 솔로몬에 의해서 죽는다. 다윗과 요압은 대조적이다. 주체성의 관점에서 다윗은 약하고 무력하다. 요압은 강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비한 다윗의 믿음을 기뻐하신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완전한 주권의 통치를 믿는가? 세상일에 대한 내 생각과 판단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족하다고, 실수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전능하신 주 앞에서 내 주체성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수용하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아니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스스로 판단하며 신처럼 되기를 원한 첫 번째 아담의 후손들은 죄와 사망에 갇힌 채 치열한 갈등과 경쟁 속에 살다가 죽어갑니다. 은혜로 택하신 자들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의 그리스도 사역으로 열린 출세상의 문을 거쳐 영생의 길에 오를 것입니다. 선민에게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세상과 육신의 집착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그 십자가와 부활을 향하도록 인도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과 소망, 사랑 안에서 마음이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이르기 원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오직 믿음으로 육신의 욕구를, 타락한 세상의 요구와 조롱을 이기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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