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기회가 주어지다(삼하17:1-14)
아히도벨이 강권한다. 압살롬에게 도주하는 다윗을 즉시 추격해서 죽이자, 그가 놀라고 상심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한다. 다윗에게 재기와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실행되지 않았다. 다윗이 남겨놓은 후새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윗과 백전의 용사들의 독기에 찬 반격을 당하지 말고 먼저 전국에 새 왕의 등극을 알리라 권했다. 왕의 이름으로 전국에서 많은 군대를 모아 적들을 일거에 섬멸하라는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을 생각한다.
압살롬은 후새의 전략을 취했다. 신하들도 후새의 계획이 아히도벨의 계획보다 낫다고 여겼다. 압살롬은 이미 민심을 훔쳤다. 수도인 예루살렘과 신하들, 후궁들도 뺏었다. 예루살렘의 정권은 이미 그에게 넘어갔다. 다윗은 정신없이 도주하는 무능한 왕일 뿐이었다. 모두 자축하는 중 아히도벨이 승리를 확정하는 치명적인 전략을 내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재앙을 주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도록 역사하셨다. 피조된 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 통치의 중심은 주께 마음을 드리는 다윗에게 있음을 드러낸다. 아마 다윗도 이 환란을 겪으며 그동안 마음에 들어와 있던 세상의 좋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믿음의 시험을 치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잃은 것들을 아깝게 여기며 마음에 품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쏟았다. 주께서 그 순전한 믿음을 보셨다. 그러므로 다윗을 중심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셨다. 결국 아히도벨의 계략은 무산된다. 실패를 깨달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자살한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아무리 치밀한 생각과 계획으로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인생은 자살로 끝난 가룟 유다의 인생과도 유사하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혼돈과 공허, 어둠의 땅에서 육신의 종말을 맞을 것인가?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의 편에서 마쳐야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 죽음과 부활의 생활화를 통해 들어가는 하늘길이 성도가 달려가서 마쳐야 할 인생의 끝이 아니겠는가?
만유의 주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주를 찬양합니다. 선하신 뜻으로, 완전한 사랑과 공의의 섭리로 통치하심을 믿습니다. 본래 인류는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책임질 필요가,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릴 이유가 없는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그 판단과 뜻을 받으면서 기쁨의 동산 에덴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험에 들며 죄와 사망의 저주에 매였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별세와 구원의 길이 우리에게 열린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천국 자녀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이끄소서. 오직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의 남은 날들을 채우며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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