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이기고 통곡하는 다윗(삼하18:24-33)

되어지는대로 2023. 5. 16. 06:02

이기고 통곡하는 다윗(삼하18:24-33)

 

   압살롬의 죽음에 다윗이 슬퍼한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가 너 대신에 죽을 수 있다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성문 위 방에 들어가 통곡한다. 왜 그렇게 슬플까? 압살롬은 그를 죽이려 했다. 나라와 백성, 후궁들까지 도적질했다. 은혜가 없었다면 그는 아들에게 죽었을 것이다. 슬퍼하는 그의 마음을 생각한다.

 

   단지 아들을 향한 자연적 본성, 부성 때문일까?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보면 많은 왕들이 왕권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경우도 있다. 측천무후는 아들을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 네로 황제는 엄마를 죽였다고 한다. 부성이나 모성보다 권력과 명분, 등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더 강하지 않은가? 다윗의 슬픔은 자연인의 부성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정 때문에 그렇게 통곡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단순하게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닐까? 성경은 그런 이유로 이렇게 길게 그의 슬픔을 기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를 바라보며 느끼시는 그 아픔과 슬픔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 복음의 관점, 즉 우리를 위해 몸으로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픈 마음을 알리려는 것이 아닐까? 본래 다윗은 왕위에 집착하지 않았다. 아들이 왕위를 뺏으려 한 사실에 그렇게 분노하며 상처받지 않았다. 그에게는 왕위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유일하며 최고로 좋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 그러므로 주저 없이 왕위를 던질 수도 있다.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어도 죽이지 않았다. 시므이의 모욕과 저주도 받아들였다. 마음이 세상을 떠나 주 하나님께 밀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압살롬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은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사랑하는 아들이 가장 좋으신 하나님, 긍휼하신 주를 알지 못하고 죽은 것이 불쌍하고 슬픈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고 슬퍼하시는 것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나 슬플 것이다. 압살롬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다윗은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슬퍼하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시선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는가?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그 안에 머물 때 가능하다. 과연 나는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따라 사는가?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사랑으로 지으시고 구원하시며 영생의 자녀로 부르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물질 세상과 육신에 갇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유일한 있음과 좋음과 주권을 모르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그 삶의 과정은 땅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구원의 통로입니다. 그 별세와 영생의 길에 우리의 마음도 오르며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에 닿기를 원합니다.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이르게 하소서. 부패한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이기며 선하신 뜻을 생활의 현장에서도 이루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