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죄(히10:26-39)
“만일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인 후 일부러 죄를 지으면 속죄하는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들을 삼켜버릴 맹렬한 불만 남아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가혹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두려운 말씀이다. 신자들은 구원을 확신한다. 심판 없이 천국에 갈 것을 믿는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히브리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단순한 협박성 표현일까?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배당도 조직도 없었다. 가정에서 만나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성찬을 하며 은혜를 나누었다. 세상의 박해가 심해졌다. 가정 교회의 모임을 버리고 이전의 유대교 종교로 돌아가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배교는 돌이킬 수 없는 죄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를 짓밟는 것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기독교 종교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를 짓밟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죄를 깨달았다면 다윗의 회개처럼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들을 마음에 품고 기뻐하며 의지하는 것은 이미 배교한 상태이며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살이 찢기신 예수를 저버린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받는 십자가의 은혜를 무효화한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세상을 향한 마음을 죽이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난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돈과 명성, 등 세상의 이름들을 품고 사랑하며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미 영적 간음이며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두려운 것은 세상의 대상과 일에 집착하며 기뻐하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속죄와 회개의 기회를 놓치며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명하신 대로 신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더 나은 하늘의 보물을, 영생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좋음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천국의 좋음에 비길 수 없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보다 나은 사랑은 없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의지하며 온전한 구원의 길에 오르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완악한 자녀들을 사랑으로, 긍휼과 자비로 품고 이끄시는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저주에 매인 현실을 잊고 오만한 착각으로 자기 생각과 느낌을 고집하며 거룩한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녀들의 죄를 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에 연합하며 우리의 마음과 몸도 구원의 여정을 따르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영적인 분별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랑과 공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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